망령을 붙들고 살고 있었다.
스스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감정보다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살아가게 되었다.
자기연민에 빠지다보면
헤어나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 마음 어딘가,
감정의 문은 열면 안되는 금기가 되었다.
휘몰아치듯 아팠던 그 시간들이
폭풍이 지나가듯 사라지고
평온한 날씨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은
정말 평온해진 것일까?
아니면 가려진 것일까?
그저 평온해진 것이라 믿고 싶었고 그리 믿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출근 전까지 단 1분도 허투루 쓸 수 없이 바쁘다.
문밖을 나서면 버스정류장까지 뛰어간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고나서야 한숨을 돌리고
잠시나마 쉬는 일상의 반복이다.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아이들 몫으로 각각 정기적금도 시작했고
아이들의 학업과 진로에 대해 공부도 하고 고민도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나가는 일상이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행복하기도 했다.
...........
전남편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 없이 잘 해나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야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닫고
가끔 여러 생각이 스치곤 한다.
올해 들어 유독 전남편이 생각이 났다.
공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20여년전 묵혀뒀던 여러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전남편의 첫출근날도 선명했다.
적응하기 힘들 때마다 수십통 전화를 해댔던 것도 떠올랐다.
업무를 모르겠다며 울상이 되어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나에게 보여주고 도와달라고 하던 것도 떠올랐다.
그렇게 순진하고 착했던 전남편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찰나와도 같은 그 시기의 전남편과
지금도 함께 하고 있음을..
내가 놓아준 사람은
너무 변해버려서 누군지 알 수도 없는 낯선 사람이고
여전히 나는 과거 속의 망령과 함께 하고 있음을..
집에 와서 아이들을 보며
영원히 그 망령과는 작별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유난히 아빠의 외모를 닮은 딸과 아들,
성격마저 일부 닮았는데,
평생 함께 보고 살아야할 아이들이 있는데
잊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잊지 못한다 해도
내가 알던 사람은 이미 세상에는 없다.
아련한 기억일지라도 나를 위해서
좋은 기억만 간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이성적인 생각들로
괜찮아. 잘 살고 있잖아 스스로 되뇌여도
이유없이 눈물이 가끔 흐르는 걸 보면
마음 속 어디선가 숨죽여 울음을 참고 있는 내가 있나보다.
괜찮다. 울어도 괜찮다.
잘 떠나보낸 것도 잘했다.
감당하기 힘든 마음 잘 수습해서
현재 일상처럼 바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거
너무 잘했다.
아직은 해야할 수많은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나면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