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전에는 매 끼니마다 국, 찌개, 나물, 구이, 전 등의 한식상을 차렸다. 그뿐 아니라 밤에는 술안주를 만들고 아이들 간식도 준비했다. 베이킹도 손수 할 정도로 먹거리에 진심이었다. 주말에 하루 3끼를 차리는 날이면 종일 주방을 떠날 수가 없었고 그게 나의 역할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애들 아빠가 집을 나가고 한동안은 습관처럼 예전과 같이 식사준비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국이나 찌개를 잘 먹지 않았다. 그리고 장아찌류도 먹지 않았고 냉장고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버리는 음식과 식재료가 많아졌고 어느 순간부터 식단에 대한 생각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요즘은 김밥, 삼각김밥,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 야끼소바, 카레라이스, 스파게티, 각종덮밥(불고기, 닭갈비 등) 등의 일품식이나 간편식이 주를 이루고 고기만 자주 구워 쌈과 곁들이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면류를 먹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각종야채 등 매번 구비해놓지 않아도 되어 장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것도 덜하게 되어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냉장고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 시리얼, 고기, 치즈가 항상 상비되어 있고 주류나 안주류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통의 쓸모도 많이 없어졌고 큰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서 먹다 보니 밥상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이면 새벽에 일어나 그날 오후에 먹을 걸 간단히 요리한다. 그리고 일부는 도시락통에 담아 회사로 가져가 점심으로 먹는다. 아이들과 나는 아침을 먹지 않아 아침은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아들은 오후 4시쯤 하교 후 집에 오면 내가 준비해 놓은 일품식을 간식대신 먹는다. 저녁을 일찍 먹기 때문에 퇴근 후 7~8시가 되면 아들이 간식을 찾고 감자든 고구마든 아이스크림과 함께 내어준다. 나는 저녁을 먹고 싶은 걸 간단히 만들어먹고 만다. 딸은 점심, 저녁을 밖에서 먹기 때문에 우리 집은 세 식구가 둘러앉아 밥 먹기 어려워 외식도 거의 하지 않는다.
덕분에 직장을 다녀도 예전에 비하면 덜 피곤하다. 저녁에 자유시간도 생기고 잠도 실컷 잘 수 있다.
요리를안 하다 보니 하는 방법을 많이 잊어버렸다. 이제는 김치도 담그지 않고 사 먹는다. 갈비든 불고기든 시판양념을 구입한다. 점점 편하게 바뀌어가고 있는 중이다.
가끔은 예전 생각이 난다.
봄이 되면 연한 미나리 사서 삼겹살 파티를 하고 여름이면 삼계탕을 만들고 겨울 초입에는 김장을 하고 수육도 삶았다. 제사가 있는 날은 휴가를 내서 온종일 튀김하고 나물 무치고 생선굽고 탕국만들고 청소하고 그렇게 바쁘게 보냈다.
연례행사가 아니어도 자주 특별식을 만들곤 했다. 갈비찜이나 전골 등 차려놓고네 식구가 둘러앉아 함께 먹었던 식사풍경이 눈에 선하다. 내 몸이 피곤해도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그 순간 참 뿌듯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 밥상을 차려내느라 장보고 손질하고 불 앞에서 요리하고 세팅하고 설거지하고 그 수고로움을 가족들이 알고 고마워했을까?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겠지. 입맛이랑 다르면 음식투정을 듣는 것도 내 몫이었다
무엇보다 이젠 체력도 예전만 못하다.
대신 한 그릇음식이라도 맛있게 만들려고 각종 레시피 검색하며 노력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손수 만들어먹을 수 있게 조금씩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