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다. 잠시 만날 수 있냐는 친구의 전화에 버스를 갈아타고 친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나에겐 30년 지기 특별한 친구다. 몇 년 전, 애들 아빠의 외도를 알고 방황을 할 때 친구가 머물러 있는 기도원으로 가서 며칠 묵고 온 적이 있다. 친구는 날 위해 오랫동안 기도를 해주었다. 그 진심이 느껴져 큰 위로를 받았다.
친구와 만나고 나는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담을 전공하고 관련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친구의 직관적인 조언은 항상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헤어지기 전에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 이혼한 거 주위 사람들한테 어디까지 알렸어?"
"너 포함 친구 4명, 대학동생 1명, 지인 몇.. 그리고 가족들 정도? 요즘엔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냥 솔직하게 얘기해. 알아도 괜찮은지 좀 된 거 같아."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인생이 완벽했고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주위에 알리기 힘든 것 같더라. 나보다 이혼한 지 오래되었어도 여태 숨기는 사람도 있고 이혼을 흠집? 약점?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온라인카페에서 만난 이혼동기(?)들의 얘기들을 했다.
잠시 후
친구는 이혼을 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난 내가 이혼할 줄 몰랐어."
"그 때 널 위로해 줬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막상 겪어보니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어. 네 생각이 많이 났어. 그때 정말 힘들었겠다고..."
"네가 아는 분들처럼 나도 그런 건가..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든 걸까?"
"나는 아무한테도 알릴 자신이 없어."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부터 친구얘기를 들어줬어야 했는데... 후회가 많이 되었다.
겪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공감을 잘할 수 있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혼에 대해 사람들은 "요즘 뭐 이혼이 흠인가요?"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아마 그들의 자식이나 형제가 이혼녀 혹은 이혼남이랑 만나기라도 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다들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표현할 뿐이다. 솔직히 나 자신부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내가 이혼을 했는데도 말이다.
이혼을 하게 되면 수많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실패자, 낙오자, 비주류의 낙인이 찍혀버린 거 같고 자존감, 자신감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아무리 우겨도 소용없다. "이혼"이라는 자체에 나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기분이 든다.
그걸 알기 때문에 주위에 알리기가 꺼려지는 건 당연하다. 동시에 당당하지 못한 자신에게 자책하게 된다.
그런 자책감뿐 아니라 상실감, 허탈감, 슬픔, 서러움, 고독감, 불안, 막막함, 수치심, 후회 등 이혼 후 물밀듯 밀려오는 수많은 감정을 단시간 내에 정리하기란 어렵다.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조금 덤덤해지고 단단해지고 나서야 사람들한테 알릴 수 있었다.
물론, 나도 그 시기를 겪었다.
이혼사실이 알려진 후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다를 수 있다.
나의 불행이 전염이라도 될까 봐 멀리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여기까지인 거지
어떡해? 불쌍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반면에 자신은 낫다는 생각도 들겠지. 어쩌겠어. 그래도 그 마음 한편에는 "걱정"이 있는 거니까 그 마음만 생각하자.
요즘 이혼이 흔해서 별거 아니라고 반응하는 사람은 나름 자신만의 위로방식이겠지. 그 마음만 생각하자..
겪을수록 마음은 단단해진다. 친구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밤늦게 친구에게 톡을 보냈다.
'힘든 거 당연한 거니까.. 힘들어해도 괜찮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싫으면 알리지 마. 그건 네 자유야. 그리고 자책하지도 마.'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 말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야.'
친구가 평안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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