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안전한 틀 안에서 무탈하게 살아갈 거라 의심치 않았는데 그 틀이 와장창 깨지면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현실 너머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관심에도 없던 여러 사회이슈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가끔 공상과 망상을 즐기기도 하고 뻔한 결말보다는 누구나 예상치 못한 결말을 꿈꾸게 되었다.
더 큰 변화는 극 T가 된 것이다.
이혼 전 3년 동안 나는 감정에 질질 끌려다녔다.
이혼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같이 하는 것도 힘들다 보니 자기 연민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고 방황도 많이 했다. 지금의 상황은 모두 배우자 탓, 부모 탓, 남 탓이라 여기며 억울해하며 세상을 원망했다. 어느 정도 힘들어하다 툴툴 털고 일어서야 하는데 "배우자의 외도"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역할에 소홀했다. 엄마가 방황할수록 아이들도 그렇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뿔싸.. 하는 순간, 이미 아이들은 표정이 굳고 방문을 닫고 말문도 닫혔다. 거기다 죄인처럼 숨죽여 살던 전남편이 갑자기 목소리가 커졌다.(다시 외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병이 찾아왔다.
그 모든 것은 한꺼번에 다가왔다.
최고의 고통이라 생각했고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여겼는데 더한 고통들이 찾아오니 위기 앞에서 "이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생존본능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뒤로 감정은 한동안 소멸되었다.
이전에 삶에 대한 미련도, 연민도 사라졌다.
지나친 이성은 편리하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했다.
"이혼" 앞에서 나는 계산기부터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표독스럽게 변해버린 한 중년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더 이상 남편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슬퍼하고 남편이 떠날까 봐 두려워하던 그 여자는 이미 없었다.
며칠 전, 딸은 9모를 치고 등급이 떨어졌다며 한참이나 눈물바람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런 딸을 보면 더 마음이 아파 며칠간 잠도 잘 못 자고 속상해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딸이 우는 것이 불편하다.
'공부를 열심히 안 했는데 어떤 결과를 바란 거니?'
'운다고 해결되니?'
'차라리 지금 이 시간에 공부를 더 하는 게 어떻겠니?'
위로가 필요한 딸에게.. 솔직한 표현이 현재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생각에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었다.
'실컷 울고 나서야 속상한 마음 흘려보내겠지.'
이후 진정이 된 아이에게..
"모든 시험은 운도 따라야 해서 노력만큼 결과가 항상 비례하는 거 아니더라.:
"어떤 결과든 다 살아갈 방법은 있다. 인생이 끝난 거 아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딸은 그래도 원하는 대학을 가고 싶다며 공부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열심히 계획을 지키지는 않는다.
큰 아이가 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혼자 벌어 끝까지 밀어줄 수 있겠냐며 걱정스럽게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알아야 판단할 수 있으니 계산기부터 두드렸다.
학원비, 정시특강비 등 학원비용과 인서울, 경기권, 지방대 재학할 경우 4년 치 등록금과 기숙사비 또는 원룸비, 용돈, 교통비 등 졸업 후 취업할 때 구해야 할 방값까지 일일이 엑셀로 표를 만들어 빼곡히 금액을 집어넣었다. 최소비용도 넣어보고 최대비용도 넣어보았다. 다행히 아이들 몫으로 예금해 둔 걸로 넉넉하진 않아도 충당이 가능했다. 그래서 열심히 해보라고 지지해 주었다.
아이들 문제뿐 아니라 직장 생활할 때도 감정을 절단해 버린다.
생각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은 생각을 지우려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들은 미련 없이 무시해 버린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하면 좀 나아질지 방법부터 구상한다.
사람들은 만나면 앞으로 관계가 어찌 변할지부터 생각해 보고 적당히 선을 그으며 친분을 유지한다.
좋고 나쁘고 이런 감정보다 현명한 선택만을 하려고 애쓴다.
이미 난 좋은 사람은 아니니 나쁜 사람만 되지 말자.
직장 내에서 일 잘하는 이미지만 남기고 뭔갈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자.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되, 굳이 관심을 가지지 말자.
가장이자 엄마역할이라는 큰 책임감으로 감정을 내 마음 어느 구석에 몰아넣고 봉인시켜 버린 것 같다.
언젠가부터 즐기던 와인도 먹지 않는다. 취기가 올라오면 스멀스멀 감정이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의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더 기를 쓰고 꼿꼿하게 옆을 지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무너질 때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어떤 결과든 괜찮다고 품어주려면 나의 감정은 잠시 묻어두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