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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한끼 Oct 13. 2024

오래 묵은 상처

희미해지는 날이 올까..?

지난주부터  3주간 교육을 받는 중이다.

교육 첫날, 각 팀이 꾸려졌다.


한 팀당 8명의 조원이 있는데

대부분 2~30대 공무원이고 다들 어리고 이쁘다.


이모나 엄마뻘인 나와 잘 지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서로 조심하고 배려심이 많아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다.


그중에 20대 후반 남자공무원이 눈에 띄었다.

키도 크고 단정하니 조용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지정된 좌석이 바로 옆 자리인데

그 직원의 옆모습을 볼 때마다

20년 전.. 애들 아빠가 떠올랐다.


그 사람도 저렇게 신규 교육을 저 나이에 받았겠지

인물이 좋으니 동료들에게 인기도 많았을 테고


임용되자마다 곧 나와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되었는데,

저 나이가 참 어린 나이로 보이는구나.


이혼 전, 한창 서로 열올리고 다툴 때

너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

부유한 집안에 능력 있는 배우자를 고를 수 있었다고!

나에게 소리를 질렀던 것도 떠올랐다.


한심한 듯 보던 눈빛, 

경멸하고 무시하던 언행과 행동들을

결혼생활동안 꽤 오래 겪어오면서

그렇게... 수없이 다쳐왔던 것 같다.


체력이 점점 떨어져 버거운 데다

마음까지 힘들어지니

또 스스로를 학대하듯 몰아치기 시작했다.


너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이렇게 게을러서 뭘 하겠다는 거야..?

네가 제대로 하는 게 있기나 해?


나이 들어 공직에 들어오면

조직을 망가뜨리는 거라고

(이 말은 전남편이 나에게 직접 했던 말이다.)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까?


사무실에서도, 교육장에서도

내 나이는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고 불편하구나.


그런데, 난 직장이 너무 절실한데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인데,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 문제를

괜찮은 척 외면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스스로를 의심하고 못마땅한 상태로 일주일을 보냈다.



무의식 저 깊은 곳에

전남편에 나에게 쏟아냈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다.


치료할 수 있을까?

진정 나아질 수 있을까?



심각한 우울증 환자처럼

어제는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저녁 무렵 되어서야

 언니들과 하는 딸계모임에 나갔다.


" 네 나이가 그럴 나이야.

갱년기가 시작되어 호르몬이 불균형하니

심리적으로도 불안하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을 거야.


직장 다니고 살림하고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 해."


언니들의 말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

그 틈을 타고 슬며시 부정적인 기운들이 스며들다 지배당하고 만다.



건강해져야겠다는 의지가 조금 타오른다.

체력이 되고 많이 움직이고 그러다 보면

또 긍정적 에너지들이 솟아날 것이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


가장 좋아하는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가

따뜻한 라테 한잔 마시면서

종일 멍 때리다가 책 보다 반복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보자.



마음이 바닥을 콩 찍고 이제 슬며시 올라갈 태세이다.


내일은 조금 나아질 거야.

나답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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