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하기, 감정 활용하기
상대에게 내 말로 영향을 주려면, 즉 감동받게 하거나 설득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억에 남게 말해줘야 합니다.
기껏 한 말이 30초 만에 상대의 기억에서 날아가버린다면 영향을 주기는커녕 말이 제대로 귀에 닿았다고도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상대의 귀에 제대로 닿게 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의도한 대로 상대가 반응하게 할 수 있을까요?
이걸 알기 위해서 우선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잠깐 알아보겠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4가지 종류로 구분합니다. 감각 기억, 작업기억, 단기 기억, 장기기억이에요.
감각 기억
감각 기억이란 시각, 청각, 후각 등 오감으로 전해지는 자극을 기억하는 걸 말합니다. 눈으로 어떤 걸 봤을 때 바로 그 순간, 또 손으로 뭔가를 만졌을 때 바로 그 순간, 냄새를 맡았던 바로 그 순간 아주 짧게 기억하는 것들이죠. 대략의 시간을 재보면 1/4~2초 사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귀로 들었던 정보가 2초로 가장 길게 기억된다고 하네요.
작업기억
작업기억이란 의식적으로 작업해서 저장한 기억을 말합니다. 전화를 걸기 위해 잠깐 번호를 외우고 있는 시간 그런 것들을 의미하죠. 번호를 외우려면 눈으로 보든, 입으로 소리를 내든 몇 번 반복해서 외워야 하죠? 작업기억은 이렇게 반복을 해야만 유지가 가능합니다. 단기 기억과 비슷하지만, 단기 기억은 기억 시간이 짧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고, 작업기억은 현재 사용 중인 기억이라는 의미를 강조한 용어입니다.
단기 기억
단기 기억은 반복 없이도 저장되는 기억입니다. 작업기억보다는 길지만, 소실 위험이 큰 기억이기도 하죠. 잘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감각 기억을 통해서 어떤 정보가 들어오면, 그중에서 집중할만한 정보에 대해 처리를 하는 기억입니다. 단기라는 말처럼 용량의 한계가 있습니다. 숫자나 문자, 단어의 경우 약 7개 정도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지속 기간은 15-30초 정도이고, 반복하면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장기기억
마지막으로 장기기억은 말 그대로 며칠, 몇 개월, 몇 년 이상 지속되는 기억입니다. 거의 무한대의 용량이라고 하고,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기억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알아듣고, 잘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상대의 장기기억 속에 심어 넣을 수 있을까요?
상대의 뇌가 내 말을 정교하게 작업해서 기억하지 않으면, 30초가 뭐예요 1초도 안 돼서 우리의 말은 하늘로 날아가 버릴 거예요. 그래서 그 정교한 작업을 말하는 사람이 도와줘야 하는 거예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그 방법이 이 2가지입니다. 반복하고, 감정을 활용하고. 자세히 볼게요.
1. 반복
밑줄 치고, 따라 읽고, 질문에 답하고.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많이 접해보셨죠? 이런 것들이 다 반복인데요, 4가지 방법의 반복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용의 반복입니다. 핵심을 한 번 더 말해주는 거지요. "내일까지 꼭 답변 달라고 해. 내일까지야."
듣는 사람에게 같이 말하면서 반복하는 것도 있지요. "내일까지 꼭 답변 달라고 해. 언제까지라고? 내일까지." 듣는 사람도 같이 "내일까지."
꼭 똑같은 내용을 똑같은 형식으로 반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 의미이지만 다른 형태로 반복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관련 자료를 다양하게 보게 하는 것도 그 예죠. 확증편향에 대해 설명해 드릴 때, 여러 가지 사례를 보여드렸죠. 고릴라 실험 영상 자료, 착시그림, 양 리우(Yang Liu)의 책 'Ost trifft West', 미 태평양 함대 총사령관 키멀 제독의 일화까지 보여드렸는데요, '확증편향'에 대해 여러분에게 이해시키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기 위해 반복한 사례들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어조의 반복입니다. 말에 리듬 넣기, 강조하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톤과 말투에 차이를 두고 띄어 읽기, 쉬기 등을 통해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리듬 넣기와 강조하기의 구체적인 방법, 4강조법과 전체 말에 흐름 넣기 알려드렸죠?
세 번째는 질문입니다.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방법이 있어요. "내일까지 꼭 답변 달라고 해. 언제까지라고 했지?"
제가 아이들에게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자전거 탈 때는 택배차 꼭 조심해. 뭘 조심하라고 했지?"
수업이나 강의가 다 끝난 후 간단한 퀴즈를 내면서 복습을 하는 것도 이에 해당합니다. 퀴즈에 대한 보상이 주어질 때 의욕이 더 살아나기도 하지요.
그리고 꼭 대답을 그 자리에서 바로 듣지 않더라도, '생각해 볼 문제' 등을 주면서 간접적으로 질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질문받은 사람은 혹은 그 질문을 읽는 사람은 스스로 내용을 정리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반복하고, 기억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Activity를 통해 몸으로 이해하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요, 저는 스피치 수업을 할 때 짝꿍 activity를 통해 지난 수업 시간에 했었던 내용들을 복습하는 시간을 종종 갖습니다. 기억나는 것들은 짝꿍에게 설명하면서 또 한 번 장기기억화시키고, 기억이 잘 안 되는 것들은 확실하게 분류해서 복습하는 것이지요. 이걸 기억 모델로 설명하면 작업기억에 다시 넣어서 장기기억으로 바꾸는 겁니다.
2. 감정 활용
상대가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두 번째 방법, 감정 활용하기. 이건 상대의 감정을 건드린다라는 의미예요. 어떻게 건드릴까요? 정보에 감정을 실어 넣어 주면 상대의 감정에 가 닿습니다.
정보 내용에 감정을 실어주거나, 전달하는 어조에 감정을 실어주는 방법이 있어요.
리듬 넣기, 강조하기는 어조에 감정을 실어주는 방법이죠.
1) 내용에 감정 싣기
우선 내용에 감정을 실어주는 방법은 이런 겁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나 결국 인간 승리를 해낸 주인공들의 이야기 들어보셨죠? 영화, 드라마, 책 등 모든 스토리에는 항상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일들이 담겨있습니다. 악당을 물리치고 조력자의 도움을 얻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잖아요? 그 어려운 경쟁에서 기어코 이겨내는 선수의 스토리에 우리도 울고 웃으면서 함께합니다.
그 스토리에 빠지면 주인공이 어려움을 당할 땐 내가 그렇게 되는 것 같고, 주인공이 이겨낼 땐 나도 같이 이겨내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실제 내가 주인공과 비슷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면, 더욱 스토리에 깊게 빠지죠.
결말 부분에 다다르면 주인공처럼 나도 같이 이겨내 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렇게 빠지는, 몰입하여 감정이 북받치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나만의 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가 만들어집니다. 이 영화, 이 드라마는 장기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이지요.
상대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이런 스토리를 붙여주면 듣는 사람의 뇌에 강렬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허구의 스토리도 좋고, 실제 관련 사례가 들어가면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지고, 감정 이입되지요.
TED라고 들어보셨나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and Design).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영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콘퍼런스라고 불리기도 하죠. 테드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유튜브로, 앱으로 강연을 무료로 들을 수 있습니다.
테드가 이렇게 성공한 이유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강연이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깨우침을 주는 깊이 있는 주제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강연자의 말을 듣다 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정이 건드려지면서 몰입하게 되거든요.
에이미 멀린스라는 운동선수가 테드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절대 걸을 수 없고, 운동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절대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죠. 하지만 이런 진단을 내렸던 산부인과 의사가 후에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근데 넌 날 완전히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어."
종아리뼈가 없이 태어났던 사람이었는데 단거리 달리기 선수, 멀리뛰기 선수가 되었고, 모델, 배우로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의사가 후에 이야기했던 저 문장을 들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죠.
듣는 사람의 경험을 스스로 말하게 하는 방법도 내용에 감정을 실어주는 방법입니다. 말하는 사람이 관련 사례를 제시해주는 것과 반대로 듣는 사람이 관련된 본인의 경험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본인의 경험이니 당연히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살아나는 것은 당연하고, 그 감정에 말하는 사람이 새로운 의미까지 붙여주면 더 오랫동안 기억하겠지요.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실어주는 감정 중에 뭐가 제일 중요하냐라고 묻는다면, 단연 재미라고 할 것입니다.
감동도 중요하지만 웃고 웃는 경험이 함께 들어가야 가슴에 오래 남습니다. TED 강연에서 인기 있는 강연들의 공통점도 유머가 담겨있다는 것이지요.
그게 꼭 농담처럼 웃긴 이야기를 해야 하거나 웃긴 행동을 해야 재미를 느낀다는 건 아닙니다. 듣는 사람이 몰랐던 내용이거나, 그 내용에 기반한 추론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도 재미를 느낍니다.
그래서 말을 하기 전에 듣는 사람에 대해 잘 파악하는 것이 참 중요하죠. 듣는 사람이 현재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과 알면 좋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내용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가능한 많이 파악하는 것입니다.
2) 전달하는 어조에 감정을 싣기
이 방법은 핵심 단어, 문장을 강조하기 그리고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서로 다른 리듬 넣기입니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님에도 새롭게 느껴지고, 주목해야 할 부분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죠. 같은 문장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감정으로 입력되고, 다른 감정은 당연하게도 서로 다른, 각각의 형태로 정보를 기억하게 합니다.
말에 리듬과 강조가 없다면 기계음처럼 들린다고 말씀드렸죠. 리듬이 있고, 강조가 있어야 비로소 인간의 말하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의 말에서 더 나아가 상대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게 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리듬과 강조를 활용해야 하고요. 4강조법 잊지 마세요!
내 말이 상대의 귀에 제대로 닿게 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고, 결론적으로 내가 의도한 대로 상대가 반응하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해 봤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말이 2초와 30초의 벽을 넘어서서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길 기대하겠습니다!
메인 이미지 출처 : flat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