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다 의심해야 해.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건.

by mbly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하루 종일 상당량의 비가 쏟아질 거란 예보가 있었지만 아침 일찍 잠시 내린 비는 곧 그쳤고, 비가 오기 전에 잠시라도 놀이터에서 놀아보자는 심정으로 자전거 부대와 또 출발했다. 하나는 세발자전거고 하나는 네 발 자전거니 발의 합이 열 세 발. 소규모 부대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마침 장난감 장 구석에서 집에서는 못 날릴 바람개비도 찾았겠다 나갈 이유는 충분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는지 아이들의 어린이집 친구들이 몇몇 놀이터에 보였고, 벌써부터 엄마보단 친구인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둔한 엄마를 뒤로하고 두 아이는 친구들을 향해 쌩쌩 앞서 달려 나갔다.


늘 그랬듯 나는 벤치에 자리 잡고 한쪽 눈으로는 아이들을 확인하면서 옆에 자리 잡은 엄마와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큰 아이 같은 반 친구의 할아버님이 나에게 말을 거셨다.


집에서 손주가 다른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딸아이도 같이 데려가서 두어 시간 같이 놀게 해 주면 어떻겠냐고. 점심 먹이고 오후에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마라고.


처음에는 "네 그럴까요?"라고 선선히 대답을 했다. 친구 집에서 놀 수도 있는 거고, 어른이 옆에 계시지 않은 것도 아니고, 놀이터에서도 자주 만나는 친구와 할아버님이라 별로 망설일 게 있나 싶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 엄마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님만 계시는 게 약간 마음에 걸렸다. 같이 놀겠다는 아이 친구들도 둘 다 남자아이인 것도 좀 신경이 쓰였다.


나쁜 상황, 나쁜 사람 그런 것을 염두에 두면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진 않지만, 뜻하지 않은 나쁜 일도 일어나는 세상이라 결국 다음에 놀자며 시무룩한 아이를 다독이며 집으로 데려왔다.





두 가지 면에서 마음이 무겁다.


첫 째는 딸을 둔 엄마로서 좀 더 기민하게 판단하고 대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모든 나쁜 상황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다행히도 험한 세상의 면면을 뉴스로만 접해왔지만, 그렇다고 항상 먼 이야기라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지금의 코로나 사태의 한 부분이라고들 하지 않나.


상대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재빨리 떠올렸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렇게 할아버지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서글프다. 아이들 어린이집으로 매미, 귀뚜라미 같은 곤충도 채집해서 보내주시고 놀이터에서 손주와 아이 친구들을 살뜰히 보살피시는 모습도 종종 뵈었다.


하지만 친구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할아버지'라는 이유로 나와 같은 다른 엄마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신다는 게 당사자는 알지 못할 지라도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의 여자 친구 엄마에게는 하룻밤도 맡겨놓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두어 시간도 맡기기가 어려웠다. 할아버님에겐.




딸아이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잘 아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따라가선 안된다고 배웠다한다. 하지만 아까는 그 친구랑 너무 놀고 싶어서 깜빡했다고.


"좋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엄마 안 보이는 곳으로 함부로 따라가면 안 돼. 다음에 ㅇㅇ(아이의 여자 친구)이 집에 엄마랑 같이 놀러 가자. 전화해볼게."



대답하면서 다시 한번 참 싫다.


첫 번째의 이유로 내가 싫고,

두 번째의 이유로 이렇게 교육해야만 하는 현실이 싫다.


앞, 옆, 윗집 어디든 대문 열린 곳이면 들어가 밥상에 같이 앉았던 그런 추억, 나는 가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