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건강

피부관리처럼 자궁도 관리가 필요해.

by mbly

오늘 계획은 거창했었다.


먼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 은행에 들러 몇가지 간단한 일을 처리하고, 길 건너 꽃집에 가서 커피숍을 오픈했다는 시누이를 위한 축하 화분을 산다. 그리고 나를 위한 꽃 몇 송이를 추가해서 작은 기쁨을 누리고, 동네 산부인과에 들러 자궁경부암 정기 검진 결과를 듣는다.

병원에서 대기하면서 아침준비하면서 떠올랐던 몇 가지 글감들을 휴대폰 메모장 속에 정리하고, 몇 번 지나가면서 눈여겨 봐 둔 병원 근처 카레집에서 점심을 해결, 조용하고 평온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의 하원을 기다리며 글감을 글로 완성한다. 그리고 시부모님과 함께 시누이의 커피숍을 방문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아, 막 오픈했으니 가장 비싼 음료를 사서 마셔야겠다. 케이크도 함께. 텀블러 같은 굿즈도 몇 개 사는 것이 예의일 듯 싶다. 가능하다면 시댁에서 저녁까지 같이 먹은 후 신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집에 돌아온다. 오늘은 아이 아빠가 공부하러 가는 날이니까 저녁 준비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 야호.


그런데,


첫 문장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계획은 와르르 무너졌다.


빠지지 않고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해서 계속 관찰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며 병원을 방문했는데, 조심스러운 의사선생님의 성격 때문이라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6개월 후가 아니라 좀 더 일찍 검진을 오라하시며 그 때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하셨다. 물론 현재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고 괜찮음을 검증하기 위한 검사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덧붙여 자궁경부암 백신은 어릴 때 맞는 것이 효과적이라 하지만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45세까지도 괜찮다하시며 백신도 권유하셨다. 겉으로 봐서는 사람을 잘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진중해 보이는 의사선생님이 단지 백신을 팔기 위해서 하는 말씀은 아니신 것 같았다.


차분한 말씀을 들으면서 '뭐 별일 아니구나. 괜찮다는 것을 검사하자니까.' 라고 생각했지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원래 산부인과, 치과 이런 병원들은 좀 무서운데, 또 걱정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더 무서워졌다. (그러고보니 내과, 이비인후과 이런 병원들은 무섭지 않은데 산부인과, 치과는 왜이렇게 무서운지. 치료받는 자세가 불편하고 과정이 불편하고 느낌이 좋지 않고 그런 공통점이 있긴 하다.)


일단 권하시는 대로 백신을 맞고 (백신의 유효성 등에 대한 찬반논란을 들은 적이 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논란이 무슨 상관이냐 마음 편하게 하는 것이 제일이지 싶었다.), 약을 처방받고, 다음 진료 날짜를 예약하고 병원에서 나왔다. 나오는 발걸음이 참...

또 하루 이틀 지나면 평소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내겠지만, 다음 정기검진까지 3개월간 종종 우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설상가상으로 카레집은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쪽지만 남겨둔 채 문을 닫았고, 설명을 듣고 주사를 맞느라 시간을 지체했던 까닭에 그동안 뜨거워진 차 안에서 나를 위한 꽃들은 시들시들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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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을 지나면서 산부인과라는 곳에서 긴장과 설렘, 걱정과 두려움, 안도와 행복이라는 갖가지 감정을 겪게 되었다. 정말 내 몸에 대해서 몰랐다. 왜 예비엄마들이 그렇게 맘카페에 가입을 하는 건지 몰랐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임신의 과정, 출산의 과정, 여자로서의 내 몸의 상태에 관해 '상식'이라 불릴 만한 정보들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모를 수가 있는지. 난자와 정자가 만나고 어쩌고 하는 그런 정보 말고, 어느 시기에 어떤 변화가 어떤 양상으로 찾아오는지,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는 어떤 위험성이 있고 무슨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엄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정보가 없었더라면 매일매일 병원에 가서 물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왜 이런 거에요? 정상이에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괜찮을까요? 이런 경우도 종종 있나요? 같은 증상을 가졌던 분 계실까요?" 병에 대해서는 의사가 제일 잘 알겠지만 그래도 더 위안받고 싶은 마음,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 맘카페로 향한다.


사실 몇 달간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덕분에 도전에 대한 용기와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지만 스트레스 아래에서 알게 모르게 몸을 스스로 갉아먹었나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엄마'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따뜻하게 응원과 위로를 보내주는 맘카페 엄마들에 힘입어 또 용기를 내보아야겠다. 잘 챙겨먹고 잘 쉬고 잘 놀고 스트레스 없이 잘 지내는 3개월을 앞으로의 목표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나도 '잘 알 수 없어' 불안에 떠는 모든 엄마들을 포근하게 응원해주고 위로해 주어야지.


더불어 여자라면 산부인과와 친해지는 것을 두려워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치료' 이전에 '관리'를 위해서. 물론 진료받는 과정이 좀 불편한 마음과 자세를 요구하고 때로 '굴욕'이라고 표현되기도 하지만, 엄마로서의 나, 여자로서의 나를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피부관리 뿐 아니라 자궁관리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 자궁이 건강하지 않으면 얼굴도 예쁘기 힘들다한다. 한의사 남편의 말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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