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잘 먹이는 법
그렇게나 비가 오더니 이제는 연일 폭염주의보다. 에어컨을 끄면 바로 텁텁해지는 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방으로 돌렸다 제습으로 돌렸다, 선풍기를 돌렸다 켰다 껐다,
집에서도 어쩔 수 없는데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둘째가 결국 코를 훌쩍훌쩍한다. 그러다 손등으로 쓱. 윽. 손등에서 팔까지 묻어나는 콧물. 질색하는 내 표정이 재밌는지 연신 킥킥거리다 손을 씻으러 간다. 코 풀고 손 씻고 다 할 줄 알면서 일부러 엄마를 놀리는 녀석. 이런 경우를 두고 '어른 머리 꼭대기에 앉았다'라고 하는 거겠지.
나는 예전에 목을 쓰는 직업을 가졌을 땐 감기 기운만 돌았다 하면 병원으로 즉시 달려갔다. 매일매일 뉴스를 전달해야 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데, 약간만 코가 맹맹해지고 목이 간질거려도 듣기에는 큰 차이가 난다. 그러니 조금만 느낌이 이상해도 목에 손수건을 칭칭 감고 두 벌 세 벌 옷을 껴입고 도라지 꿀물을 마셔댔다.
코감기도 걱정이지만 목감기는 더 큰 일이었다. 뉴스를 읽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와 당황한 적이 있고부터는 약만 먹어도 된다는데 굳이 수액을 맞고 가겠다며 의사 선생님 퇴근 시간을 늦추는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지금은 바로 병원에 달려가지 않는다. 한의사 남편 덕분에 냉장고가 한약재로 가득.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로 어떤 감기 증상에 어떤 약을 써야 하는지 그 즉시 딱딱 결정하고 달여먹는다.
감기 기운이 돌 땐 먼저 열이 나는지 나지 않는지부터 살펴본다. 열이 날 때 쓰는 약과 열이 나지 않을 때 쓰는 약이 다르기 때문이다.
콧물도 맑게 흐르는 콧물인지, 진득한 누런 콧물인지, 코가 꽉 막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처방이 있다.
목이 아플 때도 부어서 침이 잘 안 삼켜지는지, 약간 쉰 듯한 느낌인지에 따라 알맞게 약을 쓴다.
그리고 또 하나. 쓴 약을 아이들에게 잘 먹이는 꿀팁. 이것은 내가 개발한 것인데, 첫 째, 포도주스에 약을 섞어 먹인다. 오렌지 주스나 딸기 주스는 약을 섞으면 맛이 이상해지지만 포도 주스는 희한하게도 포도맛이 거의 그대로 있다. 아이들 몰래 먹이기에 아주 좋다.
둘째는 커피 설탕을 넣어 한약 한 술에 설탕 덩어리 하나 담아 먹인다. 가루 설탕은 빨리 녹아버려서 너무 많이 넣게 되는 단점이 있는데 , 커피용 슈가'로 나온 제품은 마치 작은 사탕 같아서 쓴 약 한 술 뒤로 달콤함과 아작아작 깨 먹는 재미가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이가 아주 잘 먹는다. 아들 녀석은 그 설탕 깨 먹는 재미 때문에 그만 먹으래도 더 먹겠다고 약을 더 달라하니 아주 괜찮은 방법이다. 추천해준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 방법이 좋았다는 후기를 들은 적 있으니 한 번 써봄직하다.
우리 아이들은 뱃속에서부터 한약을 먹었다. 내가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한약을 먹었고 막달에는 순산하려고 먹었다. 진통이 오기 시작할 때는 배를 부여잡으면서도 재빨리 녹용을 달여 먹었다. 덕분에 둘 다 순산했고 산후풍도 없으니 남편에게 참 고맙다. 공부 열심히 해서 직업 잘 선택했어. 가족들이 덕보네.
아이들이 젖먹이 일 때도 보리차에 한약을 섞어 젖병에 넣어 먹였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물론 응가가 잘 안 나올 때, 얼굴에 열이 올라올 때 등등. 덕분에 예방주사를 맞을 때 외에는 병원 갈 일이 별로 없다.
코를 훌쩍이는 둘째가 지금 열은 없고 콧물은 맑고 코가 막히지는 않으니 그에 맞는 약을 달여야겠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남은 가지의 약재를 냉장고에서 꺼내 저울에 달아 한약 달이기 전용으로 마련해 둔 유리 약탕기에 넣는다. 일일이 약재들을 저울에 올려야 하고 몇 시간이고 달인 다음 한 술 두 술 떠 먹이는 것이 약간 번거로울 때도 있지만, 사실 이만큼 간편하고 효과 만점인 처방이 있을까. 자, 다시 풍월을 읊어본다면, 이번에도 하루 이틀 약을 먹이면 "어? 이제 콧물 안 나오네? 언제 나았지?" 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