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못해 없어
왜? 엄마 돈이 없어서?
돈 없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했나보다.
편의점에만 들어가면 입구에 늘어져있는 작은 장난감들 곁을 떠나지 않는 아이들.
"엄마 돈 없어서 안돼~"
계산대 뒤로 늘어진 줄에 마음이 다급해져서 항상 그렇게 아이들을 만류했다.
"엄마 나도 oo 장난감 사고싶어."
"안돼."
"왜 엄마 돈 없어서?"
"엄마 나도 저거 먹고 싶어."
"안돼"
"엄마 돈 없어?"
안돼, 못해, 없어 같은 부정적인 단어보다는 어떻게 할까, 할 수 있어, 만들어볼까 같은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써야 한단다. 그래야 좋은 일들이 자석에 끌리듯 끌려오고 아이들 정서에도 좋다고 한다.
돈을 많이 가지려고 해도 항상 내 지갑이 두둑하다고 느끼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단다.
그렇지만 실상은 안돼, 없어를 많이 말하고 있으니 앎과 행함의 괴리인건가.
내가 아이 였을 때 100원을 용돈으로 받으면 꼭 50원을 남겨왔더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떡볶이 3개에 50원 정도였던가.
새끼 손가락만한 떡볶이 3개 먹어봐야 간에 기별도 안갔을 테고, 친구들에게 인심을 쓰든 아니면 떡볶이에 곁들여 어묵을 먹든 100원을 다 쓸 수도 있었을텐데, 늘 50원을 남겨와서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한다.
그렇지만 엄마가 나에게 "돈 없어. 아껴. 남겨 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은 없다.
물론 아끼고 사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겠지만,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돈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꼬꼬마 시절에는 없어, 안돼, 못해 이런 이야기를 듣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엄마가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었던 기쁨을 더 누리고 싶었을 뿐.
오늘도 하원 하는 길에 편의점, 호떡가게, 아이스크림 가게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겠지만,
안돼, 없어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아이 마음에 던져질 말의 씨앗은 항상 조심스럽게 골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