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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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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라 Nov 10. 2021

산책 예찬 : 걷기 말고 산책

느리게 걷는다는 것


나의 걷기는 2년여 전 어떤 책을 만나고부터 시작된다.



<걷는 사람, 하정우>란 책을 한가로운 휴양지에서 처음 읽었는데, 부지런히 걸으며 삶을 성심껏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걷는 가운데 더 나은 내가 되고 삶의 지혜를 알아가는 게 신기했다. 하와이에 걷기 위해 가는 사람이 또 있을까?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를 걷고 싶게 만든 책이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조금 읽고 호텔 앞 바닷가를 걸어보았다. 혼자 일부러 걷는다는 것은 나에게 나만의 시간을 선물하는 느낌이었다. 선물 받는 사람도 나, 그러니 기쁨이 두 배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한껏 자극받아 예쁜 시계를 골라 나에게 선물했다. 걸음수를 측정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였다.



기분 좋게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두르고 걸어보았다. 하정우처럼 하루 3만 보는 아니더라도 1만 보는 걸을 수 있겠지 했는데 웬걸. 만보는 아무나 걷는 게 아니었다. 출퇴근 차를 운전하는 나로서는 5천보 걷기도 어려웠다. 부지런히 걸어야 7천 보라니.



그런 날들이 이어지다가 인스타그램에서 끈기 프로젝트 운동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0일 동안 매일 운동을 인증하는 프로젝트였다. 아! 바로 이거야!! 나는 당장 걷기 챌린지에 도전했다. "하루 8천보 이상 매일 걷는다!" 어쩌다 보니 목표는 만보로 상향되었고 100일간 실천해 보았다.



처음엔 운동이 목표였다. 가장 쉬운 운동인 걷기를 택한 것이다. 운동이 되려면 만보는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만보를 걸으려면 '일부러' 걷는 시간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한다던가, 업무시간 중간중간 몸을 움직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만보를 채우기 위해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면 아침 공기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한발 한발 내딛으며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신기한 것은 매일 걷는 산책로인데 어제와 같은 듯 모두 다른 오늘을 만난다는 것이다.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지만 그날의 날씨에 따라, 아님 내 기분에 따라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운동을 하려면 빨리 걸어야 한다. 그래야 짧은 시간에 최대의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침 산책은 자꾸 나를 천천히 걷게 만들었다. 길을 걸으며 주변을 살피게 된다. 나무를 보고 새를 보고 하늘도 보면서 그 순간에 빠진다.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곧 다른 것과 연결된다. 어제 읽은 책 한 줄, 그리고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나무와 닮은 나, 하늘의 구름과 닮은 인생을. 이런 걸 사색이라 하는 걸까.



산책 (散策)  [명사]
-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
- 느긋한 기분으로 한가로이 거닒.

걷다 [동사]
- 다리를 움직여 바닥에서 발을 번갈아 떼어 옮기다.
- 어떤 곳을 다리를 번갈아 움직여 위치를 옮기다.
-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출처 ㅣ 네이버 사전, 다음 사전



그렇다. 산책은 걷기와는 다르다.  산책은 일부러, 천천히 걷는 일이다. 목적이 아닌 과정이다. 천천히 걸어야 주위를 볼 수 있다. 느리게 걸어야 나를 만날 수 있다. 예쁜 길을 걸어야만 좋은 산책이 아니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매일 다른 풍경을, 매일 다른 생각을 만나기 때문이다.



책 중의 책은 '산책'이다.
_이원흥,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구나.. 책을 만 권을 읽어도 깊이 사색하지 않으면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인생은 어차피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나를 찾으려면 산책만 한 책이 없다.



책도 좋지만 산책이 더 좋다. 책을 읽고 오늘도 나는 산책을 나간다. 산책 예찬이다.




하늘은 높고 나무들이 색깔 옷을 입고 있는 가을은 걷기 참 좋은 날들이다. 매번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계절, 이 좋은 시간도 곧 지나가리라는 것을 안다. 자연이 내게 가르쳐주었으니 내가 할 일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뿐. 이제 그만 글을 마무리하고 산책을 나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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