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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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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라 Jan 30. 2024

그래, 10분만 걷자.

시작은 가볍게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다. 1년의 시작, 1월이 되었으니 새해다짐을 해야지.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울까? 연초의 단골 다짐들 중 하나가 바로 운동이 아닐까. 그래 운동을 하겠어! 마음먹고 막상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머리로는 다 아는데 왜 운동하러 나가는 것은 이토록 어렵기만 할까. 생각은 넘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내 몸 하나 일으키는 게 이토록 힘들 줄이야! 아아 귀찮아. 지금은 마침 겨울이니 밤은 길고 밖은 너무나도 춥다. 따뜻한 이불이 좋은걸- 태생이 느림보인 나에게는 운동, 거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걷기로 시작해 볼까? 세상 제일 쉬운 운동. 어디 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 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침 100일 챌린지 시작하는 공지를 발견했다. 스스로 목표를 선언하고 나서 SNS에 매일 인증을 하면 된다. SNS에 100일 인증이라니.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렇게 100일 동안 해내면 꿈을 이룬 0.1%의 사람이 된단다. 조금 망설였지만 미룰 것 없이 바로 신청하고 시스템에 나를 끼워 넣는다. 그래! 100일 만보를 해보겠어! 



눈 내리는 산책길



일단 운동을 하기로 했으니 어떻게든 걸어야지. 아침에 잠깐 걸어볼까? 한참을 고민하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오, 공기가 상쾌한걸- 기분 좋은 새소리도 들리네. 아침 운동이 이런 거였다니 생각보다 괜찮네- 인적 드문 아파트 산책로를 걷자니 여기는 내 세상이다. 기분 좋게 한 바퀴 돌고 와서 에너지를 얻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이럴 수가. 신나게 걷고 왔는데 아직 겨우 3천 보라니. 만보를 채우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구나. 



하루 10000걸음을 걷다 보니 일부러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앉아있어야 하니 움직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절대 걸음수를 채울 수 없다. 일부러 계단을 오르고, 틈만 나면 제자리 뜀뛰기도 해본다. 산책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빨리 가는 지름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걷기는 몸만 가볍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도 가볍게 해 줬다.




어제와 같은 길을 걷는데 어제와는 조금 다른 풍경을 만난다. 산책로는 그대로이지만 어떤 날은 반짝이고 생기 있게, 또 어떤 날은 차분하니 잔잔하게 다가온다. 햇빛에 따라 구름에 따라 또 내 마음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이다. 그렇다. 세상의 만물은 변한다더니, 하늘도 바람도 나도 완전히 똑같은 날은 없다.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

_니체



칸트, 루소, 니체. 산책을 즐긴 철학자들이다.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하루 4시간은 호숫가를 걸어야 하는 걷기 마니아였다. 모든 생각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니. 걷기와 철학은 분명 긴밀한 관계가 있는 듯 보인다. 내가 조금 걸어보니 알겠다. 걷는 만큼 두 다리는 강해지고 생각은 깊어진다는 걸. 걸을수록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은 단단해진다. 몸과 마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도심 속의 공원을 잠깐 걷노라면 자연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못 보던 꽃을 발견하기도 하고, 예쁜 돌멩이를 찾기도 한다. 집을 짓고 있는 까치를 만날 때도 있고, 깡총거리며 뛰어가는 청설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걸고, 생각지 못했던 어떤 아이디어가 퍼뜩 떠오르기도 한다. 



쓸쓸한 날의 산책길



그런데 항상 문제는 그 시작에 있다. 산책은 좋은데 나가기는 싫다. 그럴 땐 '일부러'나가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아주 작은 습관을 만들어볼까? 아주 쉬운 걸로. 10분만 걸을까? 더도 덜도 말고 딱 10분만.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습관을 만들 땐 평소 하던 루틴에 이어서 하면 일부러 기억하지 않아도 되기에 나는 점심을 선택했다. 어차피 식사하러 나가는데 소화도 시킬 겸 좀 걷다 와야겠다.



점심시간 후 산책은 루틴이 되었다. 밥 먹고 남은 30여분의 자유시간. 소화도 시킬 겸 사무실 앞 공원으로 나가보았다. 우아.... 우리 사무실 근처에 이렇게 근사한 공원이 있었나?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직장인들이 모여있는 도심이지만 공원은 그렇게 붐비지 않는다. 햇살과 바람, 지저귀는 새들.. 어제와 같은 듯 또 다른 오늘이다. 



10분만 걷기로 했는데 벌써 20분이 훌쩍 넘어있다. 혼자 걷는다는 게 심심할 틈이 없다. 어느 날은 해가 쨍하고 어느 날은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계절과 날씨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어느 날은 강아지가 또 어느 날은 까치 한 마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걷다 보니 옆에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꽃도 피어있네? 어머 예뻐라! 하늘은 또 어찌나 푸른지. 나도 모르게 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있다. 점점 느려지는 걷기 시간. 원래의 계획인 운동에서 멀어지는 순간이다. 만보를 채우려면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 빨리 걸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걸음수를 채우지 못해도 상관없다. 나는 산책이 좋으니까.



초록초록 빛나는 산책길



지금 이 순간을, 순간의 기쁨을 남기고 싶다. 이 시간을 기록하면 좋겠어. 사진을 폰 속에만 저장하지 말고 밖으로 꺼내볼까. 그리고 세 줄만 쓰자. 더도 덜도 말고 딱 세 줄만. A4 한 장이라면 엄두를 못 내겠지만 세 문장이니 아주 쉽잖아? 그래 한번 해보자. 



그래, 10분만 걷자. 

그리고 세 줄만 쓰자.



이렇게 나의 세 줄 산책일기가 시작되었다. 하루 10분 산책하고,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남긴다. 어렵지 않으니 나만의 루틴으로 만들어 봐야지. 시작은 아주 작지만 1년의 일기가 쌓이면 어떨까? 걸음도 쌓고 글도 쌓는 시간. 설레고 기대되는 오늘이다 :)




알록달록 가을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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