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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석 Jan 05. 2024

안녕, 나의 라이벌 캔디

04.

 참 길고 고된 하루였다.


 파트 구성원들 사이에서 업무 변동이 있었고, 변화가 달가울 리 없는 이들의 아우성이 도처에 메아리치던 날이었다. 나와 일 년 넘게 손발을 맞췄던 파트원 한 명도 업무 변동이 생겨 파트를 떠나야 한다. 떠나는 자는 본인이 왜 밀려나야 하냐며 서운함과 분노, 억울함을 토로했고, 남겨진 자라고 마냥 평온하지도 않았던 Gloomy Thursday였다.


 어수선한 와중에도, 사내에서 해외 국가에 대해 스터디해야 하는 학습조직에 외부 전문가 초대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섭외된 강사는 해당 지역 전문가로 이미 국내에서 다수의 TV 프로그램에 출연, 도서 출판, 활발한 기업강의와 온라인 강의로 유명한 분이 초빙됐다. 이미 미디어에서 강사님을 본 적이 있는 사람들도 많아, 마치 연예인을 실물영접하는 양 설렘 포자를 대기중에 뿜뿜 방출했다.  


 그토록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는  바로 내 전 직장 입사동기, 캔디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같은 직무로 입사했다. 캔디는 늘 밝고 명량했으며, 회사에서 어렵고 힘들 일, 일명 dog짜치는 일이라도 씩씩하게 해냈다. 곁에서 1818 거리며 욕을 한 바가지 해대는  나까지 다독이며 일하던 어른스러운 캔디. 호감형 미인에 싹싹함은 기본이요, 타고난 흥과 끼로 무장해 인기도 많았던 그녀를 캔디라 칭하는 이유는 바로, 어마어마한 근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울면 안 돼~ 노랫말처럼 정말 열 번을 넘어져도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전력투구하는 그녀. 나는 그녀의 그런 면을 참 닮고 싶었다.


 어릴 때 공부 좀 잘했다는 것 빼고는 특출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입사원의 미덕이라는 싹싹함이라곤 발톱의 때만큼도 없었던 나와 전혀 달랐던 그녀. 그래서 참 좋았고 많이 부러웠다. 가끔 그녀에게 질투심과 경계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를때면 '고작 내 그릇이 이 정도인가' 싶어 자괴감을 불러일으키던 그녀.


 가장 친한 동료이며 친구이자, 동시에 내 마음 속 라이벌 캔디.


 누구보다 씩씩했지만 정이 많아 눈물도 많았으며, 자유로웠던 그녀는 결국 대리 진급 전, 나비처럼 훨훨 날아 회사를 떠났다. 그후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으며, 그 사이 본인의 선택한 분야에 자리를 탄탄히 잡았다. 눈에서 멀어지고 인생의 항로가 달라지니 우리는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몇 년 전 나는 큰 병에 걸렸고, 큰 수술을 받았다. 6개월 휴직을 했고 몸의 데미지만큼이나 정신적 데미지가 커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굳이 내가 아프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갔는지 어느 날 그녀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괜찮다고. 너는 극복할 수 있다고.


 아이들이 아직 어려 내게 한 달음에 올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전 직장 입사 동기들만이 나를 부르던 그리운 애칭을 오랜만에 들으니 빈 수레 같이 공허하고 텅 빈 마음에 그제야 눈물샘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아파서 좋았던 점은 곁에 둘 사람과 멀어질 사람이 자연스럽게 구분된다는 점이었다.  


 사실 이번 초빙 강의는 그녀의 현재 인지도와 유명세에 비해 보수가 매우 볼품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강의를 수락한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었다. 내가 있어 저 멀리 지방에서 KTX를 타고 올라와 바람처럼 강의를하고 또 먼 길을 떠났다. 왕복 교통비를 강의료에서 빼고나면 열정페이 수준의 강의료인데, 그럼에도 내 얼굴을 겸사겸사 볼 수 있어 좋다고 한 달음에 와줬다. 강의 시작 전, 회사 로비에서 먼저 만난 그녀는 여전히 눈부시게 빛났다. 강의 퀄리티는 두 말하면 입 아플 수준으로 참석자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전 직장 동료들도, 나 역시도 낼 모래면 어느덧 부장급이다. 그런 내가 대단하다고 한껏 추켜세워주며, 우리 진짜 나이 많이 들었다고, 이제 징글징글하다고, 부르르 떠는 캔디는 내 눈에는 우리 처음 만난 25살의 여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고 그녀를 배웅하며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동안 하염없이 지켜봤다.


 각자의 길에서 뚜벅뚜벅 걸어왔던 지난날.


 따로 또 같이. 따로 또 같이. 따로 또 같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또 자극을 받고  


 그래서 더 많이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


 그런 그녀가 한겨울 추운 겨울 바람과 함께 또 다시 멀어진다. 한 동안 못 보는 시간들이 다시 길어지겠지만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철없던 시절 내 구애칭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존재. 그런 그녀를 만나 어느때보다 길고 고돼게 느껴지던 하루의 끝이 감사한 마음으로 맺어진다.


 2024. 01. 04 한줄 평

 

 안녕, 나의 라이벌 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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