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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석 Jan 07. 2024

사교육 선불후불

06.

 미취학 아동 때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학교에서 정규 교육과정으로 배운 것 외에 부모님 돈으로 받은 사교육들을 떠올려 본다. 피아노, 미술, 웅변, 글짓기(논술), 영어, 수학. 제법 뭔가를 많이 배웠던 것 같은데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생각보다 간소하다. 예체능계열인 음악(피아노), 미술 같은 것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배웠고, 이후 전형적인 국, 영, 수 위주의 사교육을 받았다. 목적은 오직 성적 항샹과 대학입시뿐이었다. 이후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하자 나에 대한 부모님의 사교육 지원은 끝났다.  


 대학에 진학해 친구들을 사귀며 바로 느꼈다. 나는 공부 말고 정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악기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몰랐으며,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전무했다. 외국어 역시 입시에 집중된 듣고, 읽기 위주라 제대로 말할 줄 몰랐으며, 쓰는 것은 더 꽝이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자랐다면 나와 대부분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명 사립대학에 진학했던 나는 평균이 되지 못했다. 주변에는 유복한 가정에서, 입시 목적 외에도 다양한 사교육을 받고 성장한 친구들이 넘쳐흘렀다. 할 줄 아는 스포츠도 많았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기본이요, 해외여행이나 유학 경험이 많아 외국어 회화에 능숙한 친구들이 많았다.


 기가 죽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 비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 나만의 결핍을 메꾸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었고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가 고정 수입이 생기자 더 가열차게 이것저것 배움에 매진했다.


 수영, 헬스(PT), 필라테스, 요가, 현대무용, 테니스, 글쓰기, 영어회화, 일본어, 꽃꽂이, 보컬(노래 부르기), 클래식 기타, 운전, 스피치(말하기), 금융 지식, IT관련 각종 기술 등 어른이 되어 내 돈으로 직접 배웠던 것들이다. 크게 분류해 보면 직무 관련 실용 기술, 예술계열 취미, 운동계열 취미, 외국어 정도로 분류 가능하다. 근 십 년 동안 어림잡아 몇 천은 쓴 것 같다. 아! 회사 일과 병행했던 대학원 교육도 야무지게 포함시키면 스스로에게 투자한 토털 사교육비는 어림잡아도 중형 수입차 한 대 값은 훌쩍 넘길 것 같다.

 

 확실히 어릴 때 조금이라도 맛을 봤던 분야들은 진입장벽이 낮고 학습 속도도 빨랐다. 그렇지 않은 분야는 머리도 굳고, 몸도 굳어서 그런지 영 배움이 더디고 장비가 필요한 것들은 교육비 외 부대비용도 많이 들어 재정적으로 무리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러자 부모님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어릴 때 내게 좀 더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다면, 이제 와서 이렇게 애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들었으니까. 철이 덜 들었다.


 한 살 두 살, 더 나이를 먹고 사회의 풍파를 거세게 맞으며 뒤늦게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평범한 외벌이 가정에서 나를 포함해 3명의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만으로도 힘드셨을 텐데, 취미 사교육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비록 입시위주였을지라도 우리 형제들에게 각자 부족한 과목을 보충해주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국영수만 가르친 게 아니라 국영수라도 가르쳐 주셔서 감사한 것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그렇게라도 기반을 마련해 주셔서 무사히 대학도 진학하고, 졸업해 취직도 하고, 이렇게 혼자 밥벌이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철 든 것과 별개로 스스로 공부 말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부끄러운 마음은 여전히 사그라 들지 않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돈을 벌어 더 부지런히 배우러 다녔다. 물론 조금 맛만 보다가 때려치운 것들도 수두룩지만, 반대로 아직 더 배우고 싶은 미개척 영역도 넘쳐흐른다. 단순히 스킬업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게 된 것도 성과라면 성과일까. 나는 호기심이 많고, 무언가를 배우고 학습하는 것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요즘에는 이런 사람들을 프로 자기 계발러라고 한다던데, 나는 엄청난 목적의식이 있다기보다 그냥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자유롭게 배우러 다닌다.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고 내 주변 친구들도 늘 부지런히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 한 친구는 최근 겨울 시즌에는 스키를 배우러 다니고, 여름 시즌에는 해양 스포츠를 배우러 다닌다. 역시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자란 그 친구는 어릴 때 스키 캠프 같은 것은 당연히 가보지도 못했단다. 그러니 대학 때도, 어른이 돼서도 친구들과 스키여행 한 번 가본 적이 없단다. 그간 본인은 겨울 스포츠를 안 좋아한다, 감기몸살에 걸렸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해왔는데 사실은 스키를 못타 부끄러워서 그랬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신나게 스키를 타보고 싶어 몇 년 전에 용기를 내 스키캠프에 등록했고, 어린이들 사이에서 연신 엉덩방아를 찌어가며 망신을 당해도 마냥 즐겁단다.


 그래, 배움에 어디 때가 있으랴.


 어릴 때 못 배웠어도 어른 돼서 배우면 되지.


 백세 시대라 시간도 충분한데 그게 어때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부모님 지원을 받은 사교육이 선불이라면, 성인이 돼서 스스로 배우는 사교육은 후불이라는.


 어쨎든 선불이든 후불이든 결국 사교육은 다 돈이군. 훗.


 2024.01.07 한 줄 평

 내 비록 지갑은 얇지만 배움에 있어서는 여전히 I'm still hu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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