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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석 May 12. 2024

화상면접 트라우마

02. 원맨쇼 극복하기

 이력서를 전송하고 2~3일 뒤, 1차 면접일정 안내 메시지가 왔다. 30분 동안 온라인 화상면접으로 진행된다는 간단한 안내문자와 함께 연이어 담당 헤드헌터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창 업무 중이었기 때문에 또 살그머니 폰부스로 향해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전화를 받았다. 눈치 빠른 그가 퇴근하시면 전화 한 통 달라는 말을 빠르게 전했다.


 귀가깃에 전화를 걸자 오히려 그의 목소리가 나보다 들뜬 것 같았다. 해당 기업에서 워낙 까다롭게 굴어 나 이전의 6명 정도는 애초 서류부터 탈락했단다. 유일하게 내가 서류를 통과하고 1차 면접까지 잡힌 것이라며 흥분된 톤으로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통상 경력직 채용은 오픈된 포지션과 엇비슷한 일들을 해왔다면 일단 불러서 면접부터 보며 살피는 것이 일반적인데, 요즘 시장에서 워낙 각광받는 회사다 보니 제법 깐깐하게 굴었던 모양이다.


 그는 1차 면접을 보기 전에 본인과 온라인 사전미팅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통화로 해당 포지션에 대해 충분한 정보들을 전달해 준 것 같은데, '뭘 또 사전에 미팅식이나'. 하나 싶어 조금 성가신 마음이 들었지만, 성의를 외면할 수 없어 '일단 알았다' 하고 시간약속을 잡았다.    


 화면 너머로 비추는 회의실에는 나와 소통하던 헤드헌터와 낯선이 한 명이 더 있었다. 본인이 선임급이며, 해당 기업 전문이라고 소개하며 그간 경험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더 많이 전달해 주고자 동석했다고 했다. 나 역시 간단한 인사를 하자 실전이라 생각하고 대뜸 자기소개를 한 번 해보란다. 어디 가서 그동안 언변으로 밀린 적이 없었지만 준비 없이 훅 들어온 잽에 당황한 나는 말이 꽤 장황해졌다.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이력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고, 역시 내 대답은 어딘지 핵심을 관통하지 못했다. 속으로 '그간 정말 날이 무뎌졌구나' 싶어 민망한 웃음이 덤으로 삐져나왔다. 실전에서 이랬다간 바로 광탈이다. 몇 년 만에 면접이라 준비가 좀 많이 필요할 것 같다는 자아비판 같은 내 고백에 그들도 웃으며,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다며' 그래도 내가 웃는 인상이 참 좋고 이력도 충분하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사실 나는 화상면접이 싫다.


 아니, 정확히 말해 화상면접에 자신이 없다.


 처음 이직을 준비하던 과거에 국내 일류기업 담당자들과 화상으로 1차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이야 온라인 면접이 보편적이지만 그때는 막 코로나가 닦쳤을 때라 화상면접 자체가 매우 생소했다. 나는 집에, 다수의 면접관들은 한 회의실에 모여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내 작은 화면으로는 도무지 표정들을 읽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장비가 문제인지, 네트워크가 문제였는지 연결상태도 매끄럽지 않아 나는 중간중간 '제 이야기 잘 들리시나요?'를 과장을 좀 보태 오만번은 외친 것 같다. 면접장 분위기나 면접관들의 반응을 캐치하기 어려워 질문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내가 지금 적합한 답변을 하고 있는지, 전혀 생뚱맞은 소리를 하고 있는지,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내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과 업무 전문성을 화면을 뚫고 전달하는 것이 영 어려웠다.


 원맨쇼 같았다.


 한마디로 완전 망했다는 소리다.


 미루어 짐작건대, 그들은 커다란 회의실 모니터로 나의 풀페이스를 보며 나를 세밀히 관찰했겠지만 반대로 나는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그들을 노트북 너머 흐릿한 화면으로 접했다. 이쯤 되면 거의 불공정 거래 아닌가.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2차 임원면접도 아니고, 1차 실무진 면접에서 낙방이라니.

 

 그간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화상면접이라면 질색했다. 인터뷰를 보는 사람으로서도 별로였지만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간 상황에서도 지원자들의 진면목을 파악하기 어려워 더 싫었다. 인사팀 선배들이 화상면접으로 사람을 채용하고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분위기나 에너지가 화면 속과 전혀 달라 내심 놀랐던 적이 많다고 했다. 그래, 모름지기 사람은 직접 봐야 알지.        

   

 코로나도 끝난 마당에 1차 면접을 하필 화상으로 본다니. 시간 역시 딱 30분, 그 안에서 대체 어떻게 나란 사람을 검증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했다. 과거 화상면접의 대실패 경험 트라우마를 가진, 어느새 차장이 된나는 화상면접이 영 탐탁지 않았다.  


 그래도 왔다 갔다 안 하니 몸은 편하겠다 싶고 어쩌면 이번 면접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주말 내내 두문불출하며 다가올 면접을 준비했다.


 쳇 지피티에 내 이력서를 업로드하고 해당 내용을 토대로 예상 면접 질문들을 뽑아달라고 했다. 답변 얼개도 짜달라고 하니 이놈 제법이다. 해당 기업의 최근 기사들을 모아주기도 하고 경쟁기업이나 유사기업들의 정보도 빠르게 수집해 주는 걸 보니 월 29,000원을 내고 유료 결제한 보람이 있어 뿌듯했다. 화상면접은 질색하면서 AI라는 신문물은 이리 알토란 같이 활용하는 내 모습이 좀 모순적으로 느껴졌지만 일단 돈 값하니까 됐다.    


 AI 버프와 함께 거울을 보며 맹렬히 답변 연습을 했다. 하다 보니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나의 가치를 반드시 화면 너머로 쏘아 보내겠다는 묘한 결의가 생겼다. 주말 내내 중얼중얼 답변을 연습하고 거울을 보며 표정연습을 하자 처음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때가 생각났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지금도 취업이 어렵지만 십 삼 년 전에도 만만치 않았다. 자다가 나를 툭 치며 자기소개를 해보래도 벌떡 일어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맹렬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주말내내 쳇지피티와 씨름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 '인턴'의 주인공이 어색한 손놀림으로 자기소개 영상을 찍는 모습 같았다. 처음 봤을 때, 내겐 아직 한창 남은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제 곧 닥칠 미래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내

최애 영화인데.


 아무튼, 준비는 끝났고 이제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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