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07. 이주비 대출

by 이예석

추가 분담금 공지까지 마치고, 드디어 이주 통지가 왔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임대 보증금을 조달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여기서 재건축 사업은 이점이 있다. 바로 '이주비 지급'이다.


앞으로 주거지가 철거되어야 하기 때문에 귀신 아파트 현재 거주자들은 반드시 어딘가로 이주해야 한다. 원만한 이주를 위해 조합은 금융기관에 '이주비 집단대출'을 받아 조합원들에게 지급한다. 조합원들은 이 돈으로 새로운 집이 완공될 때까지 살 임시 거처를 마련하면 된다.


단,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대출금'이란 것이다. 조합이 조합원을 대신해 대출을 실행해 이자까지 대납해 주기 때문에 자칫 꽁돈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엄연히 조합원인 내가 갚아야 할 '대출금'이며, 향후 조합에서 대납한 '대출이자'도 내가 다시 갚아야 한다. 통상 조합에서 매달 이자를 대신 내주다가, 입주 시점(잔금 정산시점)에 그동안의 이자와 원금을 한꺼번에 정산한다. 그때까지 숨을 고를 수 있지만, 결국에는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이다.


재건축 아파트에 실거주하지 않고, 세입자를 들이지도 않은 채 해당 집을 공가 상태로 비워두었다면, 굳이 이주비를 지급받을 필요가 없다. 이 경우가 가장 베스트지만 나처럼 자금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입자까지 껴 갭 투자로 매수한 경우라면, 이주비 대출금은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단, 역시 만능 치트키는 아니다.


지급된 이주비가 기존의 세입자의 임대 보증금을 100% 커버하거나, 주변에 새로운 주거지를 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지불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기본적으로 이주비는 기존 주택의 감정평가 금액의 40~70%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주비 금액을 두고 조합원과 조합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소위 "이 돈 가지고 어딜 가라는 것이냐, 길바닥에 나 앉으란 소리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시점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성이 높은 소위 ‘노른자 땅’일수록, 주변 부동산 시세도 높아 살던 곳 근처에 거처를 구하지 못하고 더 멀리 주거지를 옮기는 확률이 높다.


만약 재건축 아파트에 실 거주 하고 있다면 이주비가 지급될 때까지 버티다가, 이주비를 받고, 입주 전까지 새로운 임시 주거지에서 젖 먹던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존버'해야 하는 시점이 이 바로 이때다.




나는 이미 다른 거주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이주비를 받아 '킵'해두고 세입자님의 계약만료 시점에 돌려드릴 계획을 세웠다. 지급된 이주비는 세입자님께 돌려줘야 할 임대 보증금보다 2천만 원이 부족했다. 그래서 세입자님의 임대계약 만료일이 오기까지 '빠짝' 고삐를 조이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다행히 부족했던 금액은 열심히 일해 추가 대출 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


세입자가 나갈 때 아무리 사전에 이주 관련 특약 조항을 걸어 두었다고 해도 일명 '버티기', 소위 '배째기 전략'을 쓰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집주인에게 별도로 '이사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세입자를 내보내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주 공지가 나자, 꾸물거리지 않고 곧바로 세입자님께 공유드렸다. 빨리 말씀을 드려야 새로운 집을 구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니 되도록 신속히 연락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세입자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것도 빛을 발해 무사히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었다.


다른 세대들도 모두 집을 비우자 철거를 앞둔 아파트는 더 흉물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매수부터 이주까지 고작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순조롭게 진행된 덕뿐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새 아파트로 환골탈태할 귀신 아파트가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법.


내 초반 순풍은 딱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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