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Essay] 당신을 깨우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응애 응애’
새벽 4시 30분,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아기방으로 가 본다. 문을 열고 보니 조용하다. 가만히 문을 닫고 거실에 나와 창을 바라보니 동그란 달이 떠있다. 동그란 달을 보니 잠자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샤워를 하고 물을 끓인다. 우롱차 한 잔을 우려내어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 보니 기억의 조각들이 그려진다.
시차 때문에 자꾸 새벽에 깼다. 손으로 주섬주섬 찾아 안경을 쓰고 창을 바라본다. ‘하…..’하는 탄성이 나온다. 동트기를 준비하는 새벽 풍경을 눈에 담고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물을 끓인다. 개완을 데우고 동그랗게 말린 우롱차 잎을 넣는다.
"도도독똑똑…"
동그란 우롱차 잎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가만히 코에 갖다 대어 그 향을 맡아본다. 얼굴에 닿는 차가운 새벽 바람, 코 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타닥타닥 나무향과 꽃향기. 지금까지 기억하는 향 중에서 가장 향기로웠던 그 순간, 붉게 물든 하늘을 한없이 바라보고 바라본다. 깨어 있어서 바라볼 수 있는 풍경, 깨어 있어서 기억할 수 있는 풍경, 이렇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적을 수 있음을 깨달았던 소리, ‘도도독똑똑….’
그 때를 떠오르며 일어난 새벽, 동그랗게 말린 우롱차 잎을 떨어트려본다.
"도도독똑똑…
그래 오늘도 힘차게 솟아나자, 그렇게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행할 수 있는 것도 너 스스로일 테니까"
꽃봉오리가 터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봄을 상상했다. 러시아인들의 삶을 좀 더 이해해 보겠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주말, 호텔에서 가까운 마트에서 꽃을 사왔다. 간단한 꽃꽂이였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호텔 안에서 하는 꽃꽃이는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식탁 한켠에, 창가 한켠에 꽃을 두니 썰렁한 공간이 따듯한 느낌으로 바뀐다. 2주동안 머무르는 출장 일정 동안 일하고 들어온 나를 반겨주는 꽃, 든든하고 때론 위로가 되었다. 정신없는 일정에 쫓기는 것이 아닌 나를 자각할 수 있는 시간, 현지의 시간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만드는 것은 지나가다 산 꽃 한묶음, 그 한묶음을 살 마음이면 충분했다.
4월의 봄이라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다. 눈부신 파란 하늘과 파스텔톤의 건물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차로 이동하는 내내 눈 호강이 되었다. 주말엔 산책을 해야지 싶었는데 눈이 펑펑 내린다. 4월에 펑펑 내리는 눈이라니, 그리도 펑펑 내리는 눈이라니 이 또한 생경한 풍경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호텔방에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눈가에 괜스리 눈물이 고인다.
‘톡톡툭툭…’
궁금했다, 동방미인 우롱차에 보드카를 넣어 마시면 그리 맛이 좋다고 했다. 다양한 향을 머금은 차에 독하디 독한 보드카를 넣으면 어떤 맛일까, 추운 러시아에서 마신다면 더 그 맛이 좋을 것 같았다. 개완에 동방미인차를 우려내고, 소심하게 보트카를 톡톡톡 몇방울 넣어본다. 몇 방울이라 해야 할지 몇 스푼이라 해야 할지 암튼 그 맛은 입김이 뜨겁게 불어오는 향기를 품는 맛이었다. 두 액체의 궁합은 나쁘지 않았다. 굳이 좋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개인 취향이지만 차는 차데로 마시고, 술은 술데로 그 본연을 마시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서이다.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하품이 계속 나는 것이 졸려진다. 찻잔이라 해야 할지, 술잔이라 해야 할지 함께 기울인 친구는 바로 옆의 방으로 돌아가고 잔뜩 나오는 하품에서 느껴지는 보드카의 알코올향과 동방미인차의 특유 머스캣 향에 취해 괜스리 눈물을 고이며 잠들었다.
"톡톡툭툭,
괜찮아..오늘 하루도 충분히 잘했어, 너무 애쓰지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당신을 깨우는 소리는 무엇인가요?
그 소리에서 어떤 맛과 향이 떠오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