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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별 Apr 12. 2019

단어마저 바꾸는 스타벅스의 힘

힘 있는 브랜드

뒤늦은 나이에 어학연수를 떠났던 작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갑자기 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에서 사 온 나의 텀블러를 가리키며 ‘저것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터져 나온 학생들의 답은 당연히 ‘텀블러’.

텀블러가 텀블러지, 그게 뭐냐 물으신다면..



구글링을 해보아도 이렇게 나오는 걸요, 이것이 바로 텀블러입니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선생님이 홈스테이를 하는 학생들은 오늘 집에 가서 홈맘에게 이 물건을 뭐라고 부르는지 물어보라는 숙제를 내줬다. 그 날 집에 들어가서 홈맘에게 나의 스타벅스 텀블러(인데 텀블러가 아니라는 그것)를 들고 가, 이것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봤다. 나의 홈맘은 사실 홈맘이라기보다는 홈그랜마에 가까워서 그런지, 잠시 단어를 떠올려 내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thermos’ 란다. 텀블러가 아니냐니 아니란다. 아니 그럼 대체 텀블러란 무엇이란 말인가. 홈맘의 대답은 ‘술잔’.

다음 날 어학원에 가서 자랑스럽게 숙제 결과를 선생님께 이야기했다. 선생님의 부연설명으로는 텀블러는 유리잔, 보통은 술잔을 일컫는 단어였고, 우리가 흔히 부르는 텀블러는 thermos(보온병)로 불러왔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인지 스타벅스에서 다회용 컵을 통틀어 텀블러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thermos를 텀블러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구글 dictionary 검색결과
Oxford dictionary 검색결과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구글과 Oxford 사전 검색을 해봤더니, 사전에는 아직 본래의 의미로 등재되어있다. 유리로 된, 손잡이가 없는, 주로 술잔을 일컫는 단어.

내친김에 나무 위키도 들어가 봤다.


나무 위키에서는 텀블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손잡이가 없고 약간 길쭉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컵을 의미한다. 재질은 유리가 주로 쓰여서 유리 재질만 텀블러로 아는 경우도 있으나, 사실 재질은  상관없으며 도기나 금속 등의 재질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손잡이가 있는 것은 머그라고 한다. (이하 생략)
나무위키에서 ‘일반적인 텀블러’라고 소개한 텀블러의 모습 (출처:나무위키)
단어의 뜻까지 바꾸다니, 대체 스타벅스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멀쩡히 써오던 단어를 날름 가져다가 마음대로 의미를 바꿔버린 스타벅스의 행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의 선생님은 설명해주는 내내 고개를 갸우뚱, 눈을 찌푸리길 반복하셨다. 특히나 언어를 가르치는 업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더욱 미묘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쉼표 하나 찍는 것, 전치사 하나의 사용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하는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학원이었기 때문에 표정이 단번에 읽혔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마도 곧 사전적 의미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

언어를 업으로 삼는 선생님의 반응과 달리 마케팅을 하는 나는 스타벅스가 가진 파워에 매우 놀랐다. 늘, 주야장천, 입버릇처럼 너도나도 이야기하는 ‘브랜드 파워’ 그것이 바로 이거구나. 부러 힘쓰고 비용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이 교육되고 따라와 주고 의도대로 우리의 언어를 따라 하는 것.



나에게도 그런 힘 있는 브랜드를 만날, 만들어낼, 그런 날이 언젠가 오겠지.

모쪼록 너무 먼 미래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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