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를 동경하다가 육아만 남았다 2

엄마와 딸, 우주에 유일한 너와 나

by 오전직업

물건은 날마다 늘어났는데, 의외의 영역에서 미니멀리스트가 실현됐다. 바로 인간관계였다.


사실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동경했던 사람 치고는, 그리고 MBTI 검사를 해보면 I형 인간이 확실한 사람치고는 희한하게, 인간관계에서는 맥시멀리스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카톡 프로필이 꽉 차있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친구 추천 숫자, 팔로우 숫자 많은 게 좋았다. 아나운서 활동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도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쉽게 속내를 내놓는 성격이 아니면서도 일을 핑계로 생판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아침에 하나의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오후에 또 다른 프로그램에 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고 설익은 얘기만 기분 좋게 나누다가 자리를 옮기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었다. 이 집단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저 집단에서 주는 새로움으로 치유하는 게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었다.


포도가 태어난 이후로는, 다른 사람을 만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른 사람과 보낼 시간은커녕, 나를 돌볼 시간도 없었으니까.


아나운서에서 변호사로 직업이 바뀐 것도 한몫했다. 예전에는 주어진 방송 시간에 충실하고 그 전후로 웃으며 대화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 만나는 사람마다 본인의 내밀한 고민거리를 털어놓으며 문제를 해결해 주길 원했다.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해결해 주고 나오면 종일 나만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뭐든지 엄마가 직접 해주길 원했다. 할머니도, 심지어 자기 유전자의 절반을 담당하는 아빠가 해주겠다고 해도,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했다. 원더윅스(*아이가 갑자기 성장하면서 심적으로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 부모들에게 급격히 짜증을 낸다는 시기)와 같이 화를 내다 내다가 결국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에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엄마가!”. “엄마가(물결)”, “엄마가…” 아이는 다양한 말투와 어조로 ‘엄마가’를 외쳤다. 아기 때는 당연했고, 조금 자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능히 혼자 할 수 있게 된 일도 엄마를 만나면 엄마가 해주길 원했다. 아이가 가장 위로받고 싶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엄마니까.


둘째를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잠이 쏟아지는데, 포도는 기어코 안 자겠다며 엄마가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했다.


아빠가 해주면 안 돼?

아니 엄마가.

엄마는 지금 너무 피곤한데, 포도야 그럼 우리 같이 잠들면 엄마가 꿈에서 책을 읽어줄게.


나의 이 대답을 듣자마자 포도는 대성통곡을 했고, 울음을 멈추는 방법은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방법뿐이라는 걸 아는 나는 울음을 멈추기 위해 책을 읽어주고, 잤다. 내 대답이 얼마나 아이에게 상처가 됐는지 알게 된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어린이집 하원길에 아이 일과 중 특이사항을 전달받는데, 선생님은 포도가 ‘엄마가 꿈에서 책을 읽어준다고 했다 ‘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나는 나름대로 안 해주겠다는 게 아니라 ‘꿈에서 해주겠다 ‘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아이에게 전달된 것은 ’ 책을 읽어주기 싫다 ‘는 나의 본심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에게 거부당한 마음. 이후 그 대답을 어떻게 되돌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설명할 방법은 없었을 거다.




3살 포도가 엄마의 거부에 그냥 울었다면, 6살 포도의 대처방법은 조금 달랐다. 6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가' 자기 전 양치질 마무리를 도와달라고 하기에, ‘엄마는 오늘 (동생 때문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났고 회사에서도 힘들었고 지금은 너무 피곤하다고 했는데 왜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또 요구하냐 ‘며 눈까지 벌게져서 아이를 상대로 퍼붓고 난 다음이었다.


포도는 나에게 “엄마 나는 엄마가 좋아서, 엄마가 해줬으면 하는 거야. “라고 설명했다. 항변하거나, 화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차분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렇구나. 엄마가 좋아서 그런 거지. 너는 정말 나를 너무너무 좋아하니까. 맞아. 좋아하는 사람과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거니까. 혼자 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뭐든 하는 게 좋은 거니까.


아이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아이에게 내 마음과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쏟아붓는 게 당연했다. 나의 시간 역시 다르지 않다. 아이에게 붓는 시간은, 그 어떤 애정과 관심보다도 가성비가 좋기도 했다. 아이는 항상 내가 들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엄마를 생각하고, 40년 넘게 인생을 살아온 내가 주는 사랑보다 더 찐하고 순도 높은 사랑을 보여줬다. 게다가 내가 부끄럽지 않게, 지치지 않고 알려주고 또 알려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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