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첫 째, 포도

by 오전직업

“딸이에요.”


첫 아이를 임신하고 16주 검진을 통해 생물학적 성별이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처음 든 감정은 ‘애잔함’이었다. 너도 나처럼 여자로 살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오는 안쓰러움에 가까운 감정. 두 번째로 찾아온 감정은 그럼에도 내가 직접 조언해 주고 함께 견딜 수 있다는 ‘안도'였다. 임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성별로 평생을 생리와 임신의 불편함 또는 공포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왔고, 지금은 실제로 임신까지 한 마당에, 여성이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자신만만한 영역이었다.


특히나 나는 어려서부터 여성스럽다는 말을 꽤 많이 들어왔다. 체격이 마르고, 성격이 아주 소극적인 건 아니지만 대놓고 나서는 걸 즐기는 편은 아니다. 흔히들 “여성”에게 기대하는 외모가 곧 능력이 되는 아나운서, 기상 캐스터라는 직업을 거쳤다. 이상형은 남자다운 남자여서 키 180이 넘고 한때 몸무게 1톤에 육박했던 바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타고나길 약한 편이어서 늘 누군가와 신체적으로 분쟁이 생기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깔고 살았다. 조심하기도 했지만 혼자 조심한다고 사고를 백 퍼센트 예방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첫 임신이 모두로부터 축복받는 임신이 될 수 있었던 건 하늘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이후 친구들과 외박을 하게 되면 엄마는 꼭 여자친구들만 가는 것인지 확인했고, ‘아는 남자' 친구들이 같이 있는 모임을 더 안심하셨다. 자가용은 창문 선팅을 어둡게 해서 안이 잘 보이지 않게 하고, 대신 주차할 때마다 창문을 내려서 백미러를 봐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산다. 옆 차선 트럭 아저씨가 창문 아래로 시선을 깔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내 다리를 보는 걸 알아챈 이후로는 웬만하면 차 창문은 중간 아래로 내리지 않는다.


은근히 아들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딸이에요.’라는 말을 듣자마자, ‘너도 나처럼 살겠구나. 하지만 내가 전부 다 도와줄게!’ 하는 여성끼리의 연대의식이 아직 손바닥보다도 작은 아이에게 느껴졌다.




세상에 나온 아이와 나는 그야말로 영혼의 단짝이었다. 아이가 뭘 좋아하고, 꺼려하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해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아이를 의식하고 지켜봤으니 아이의 마음을 남들보다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당시 아이에 대한 나의 걱정 또는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아이를 봐주러 오신 시어머니가 아이가 잠든 후 옆 방에 들어가 쉬셨는데 그게 그렇게 무심하고 서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이가 갑자기 일어났을 때 옆에 보호자가 없다면 놀랄 게 뻔한데, 어떻게 다른 곳에 가서 편히 잘 수가 있단 말인가. 당연히 옆에서 쪽잠을 자야지.


엄마인 내가 출산 직후 절정이었던 엄마 호르몬이 점차 줄어들면서 나와 아이 사이의 안정을 찾아갔다면, 아이는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엄마가 전부인 세계에 머물렀다. 아기 때는 생존을 위해 엄마에게 매달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 딸은 어린이집에 다니며 어느 정도 사회화된 이후로도 유독 엄마쟁이였다.


엄마에게 퍼붓는 사랑의 정도도 넘치고 또 넘쳐날 정도였다. 딸이 5살 무렵 ‘생일= 축하해 주는 날'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11월 말인 내 생일을 앞두고 두 달 전부터 거의 매일 생일 파티와 선물을 준비했다.


어느 날은 어린이집에서 몇 날 며칠을 열심히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와서 생일선물이라고 건넸고, 다음 날은 엄마를 위해 만든 재활용품 케이크를 들고 왔다. 아빠와 둘이 코스트코에 쇼핑을 하러 가면 엄마가 좋아할 만한 생일 선물을 골라왔다. 엄마의 생일을 위한 그림이 가득가득 쌓여서, 평생 어쩌면 우리 친정엄마보다도 더 내 생일을 기뻐한 사람이 딸이지 않을까 싶었다. 색종이는 물론 나뭇잎, 손바닥, 글씨를 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엄마 사랑해요’라고 쓰거나 하트를 그려줬다. ‘엄마 사랑해요’ 팻말을 만들러 도자기 체험장에 데려다 달라고도 했다.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분명히 한 명 있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지 싶을 정도였다.


밤에 잠드는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봤다거나, 그러니까 엄마가 이 닦자고 할 때 얼른 했으면 됐잖아라는 식의 질책을 하면 딸은 속상해하면서 울었는데, 우는 이유는 “엄마가 나한테 화냈어"라는 등의 억울함이 아니었다. 아이는 "나는 엄마를 못 도와줬어."라며 울었다. 잠이 많고 체력이 약한 내가, 졸리기도 하고 내일 아침 등원이 걱정되기도 하고, 하여 화를 빙자한 짜증을 내면, 아이는 본인이 엄마를 도와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울었다. 그게 속상해서.


동생이 태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네 살이 된 꼬맹이 포도는 한 살짜리 동생이 태어나자 나름의 누나 노릇을 열심히 했다. 우유병을 잡고 있기도 하고, 내가 유축을 하러 방에 들어가면 꼭 따라 들어와 모유를 저장할 일회용 팩을 뜯어 준비해 줬다. 기저귀 쓰레기 봉지를 가져다 버리고, 아이 옆에서 책을 펼치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딸들은 역시 아이 돌보기 놀이를 좋아하는구나 싶어서 귀엽게만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우연히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포도의 본심을 들었다. 선생님이 주말에 “동생 많이 도와줬어?”하고 물었더니, 포도가 "아니? 난 엄마 도와줬는데?"라고 했단다. 그렇구나, 너는 이번에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내가 많이 힘들까 봐 도와준 거구나.




포도와 침대에 같이 누워 뒹굴뒹굴하고 있으면, 아이는 눈과 입을 모두 활짝 웃으며 까르르 하는 소리를 낸다. 웃겨서 웃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워서 웃는 웃음이다. 아직 한글도 못 읽은 이 어린아이가 아가씨가 되어서 사랑하는 남자와 이렇게 웃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중에 커서 이 웃음이 너를 사랑받게 하겠지. 그 사랑 속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웃고, 또 울기도 하고, 냉담하게 돌아서기도 하는 그런 사랑을 하겠지. 상상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아파서 가슴도 아프다며 혼자 피씨 앞에 앉아 엉엉 울던 나의 밤을 함께 떠올린다. 그 자리에 딸이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웃음이 나고 세상이 핑크빛으로 다시 한번 물든다. 그때 나는 그렇게 힘들다며 울었는데, 울고 있는 딸이, 내가, 그저 사랑스럽다.


엄마가 도와줄게! 하며 거창하게 나설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울고 불고 하는 밤이 지나면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너를 그냥 안아줄게. 너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해줄게. 네가 사랑을 다 쏟아부었다면 그걸로 된 거라고, 남자는 원래 다음 남자가 더 멋진 법이라고 얘기해 줄게. 나의 단짝. 가장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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