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힘든 이유

by 오전직업

아이는 예쁘다. 너무 예쁘다.


사실 예쁘다는 말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존재가 있다니,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정하고, 에너지 넘치면서, 나의 부족함을 쉽게 잊어주는 존재가 있다니.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독보적인 이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이고, 그 엄마가 나다. 이건 그 자체로 기적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 최고의 고난도 역시 아이였다. 1년 반을 찐하게 연애하고 결혼해서 6년 동안 별다른 다툼 없이 알콩 달콩하던 남편과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도 아이였다. 그 어렵다는 로스쿨 3년 동안 남편은 나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는데도 말이다. 밤 12시까지 공부하고도, 남편이 학교 근처에서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있다고 하면, 나는 기뻐서 남편을 데리러 가던 아내였다. 이 시간에 남편과 대화를 할 수 있다니!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데 포도를 낳고 나서, 남편을 바라보는 내 표정에서는 감정이라는 것이 점차 사라졌다. 사람이 처음에는 화가 나고, 서운하기도 하다가, 그 서운함을 감내하기 어려워지거나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사이에 감정은 점점 메마른다는 것을 약 5년에 걸쳐 알았다. 나는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미워하기보다는 마음을 접는 사람이란 것도 아이를 키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뭐가 그렇게 힘든 걸까.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대로', ‘퍼질러' 있을 수 있는 시간.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만 살았던 아기는 나와 붙어 있을 때 가장 편안해했다. 수중분만으로 아이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최고의 사랑을 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의지와 상관없이 제왕절개로 출산한 나는(아기 머리가 자궁 쪽을 향하고 있지 않아 제왕절개를 했다) 모유수유에 집착했고, 덕분에 거의 하루 종일을 아기와 붙어있었다. 젖양이 많지 않으면서도 가급적이면 분유를 먹이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계속 젖을 물도록 했고, 그런 나의 욕심을 포도는 ‘쪽쪽이 거부, 젖병 거부‘라는 나름의 방식으로 적극 지지해 줬다. 낮잠도 품에 안겨있을 때 가장 잘 잤다.


회사에 복직하면서 모유수유를 그만둔 이후에도 포도와의 애착은 강했다. 하루 세 시간 엄마 냄새를 맡아야 아이가 잘 자란다는 육아서를 바이블 삼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기와 딱 붙어있었다. 포도 역시 엄마만 찾았다. 샤워를 하고 있으면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그 앞에 앉아 엄마를 확인했고, 어린이가 되어서도 화장실 앞에 서 말을 걸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회사에 가 있는 동안 낮잠을 충분히 잔 아이는, 밤에 먼저 자는 법도 없었다. 책을 읽어주고, 토닥여주고, 노래를 불러 재워주기를 바랐고, 엄마는 본인이 잠들어서도 눈을 뜨고 지켜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결국엔 내가 먼저 잠이 들어서, 포도가 엄마를 깨우는 걸 포기하고 나서야 잠이 드는 날도 많았다.


아이가 조금 크면 괜찮아지려나 싶었는데, 회사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는 오히려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일어나서 출근할 때까지 아이와 함께였다가 사무실에 나오면서는 또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찾아 함께 집에 왔다. 아이가 내 시간을 다 가져가거나, 그게 아니면 회사가 내 시간을 관리했다.



누가 아이를 데려가서 나를 좀 숨 쉬게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소중한 아이여서 아무에게나 맡길 수도 없었다. 시어머니나 남편은 나만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내 입장에서 자주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 그나마 이모님에게는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었는데 이모님의 시간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인 데다가, 엄마가 본인 놀고 싶어서 돈을 쓴다는 것에 대한 가족들의 동의도 기대할 수 없었다. 나부터 놀러 간다는 게 마음 편하지도 않고 죄책감이 드는데, 등 떠밀어주는 사람도 없으니 써먹을 수가 있나.


내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욕심 많고, 새로운 일을 경험하기를 좋아하는 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면 따로 정리하면서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한 나. 변호사 사무실을 차려서 방송 경력을 살려볼까, 하고 싶던 인플루언서에 도전해 볼까, 이번엔 뭐가 되어 볼까 고민하던 나.


뭔가를 시작하려면 빈 공간이 있고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당장 잠잘 시간도 항상 부족하고 저녁에 제정신으로 밥이나 온전히 먹으면 다행이니 있는 나 마저 갉아먹을 판이었다. 샤워 후 로션 바를 시간이 없어서 칙 한 번 뿌리면 끝인 스프레이형 오일을 사고, 어린이집 하원 직전에 구내식당에 들러 10분 만에 밥을 먹었다. 배가 고픈지, 메뉴가 뭐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배를 채워야 집에 가서 편안했으니까.


이렇게 6년을 보내고 이제는 여유가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는 결론이면 참 좋을 텐데, 나의 하루는 여전히 육아(엄마)와 회사(근로자)로 양분되어 있다. 육아기 단축근로까지 신청해서, 오롯이 육아 시간이 한 시간 늘었고, 회사에 있는 시간의 텐션은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그래도 그 틈을 비집고, 어떻게든 한수정을 끼어넣기 시작했다.


과연 가능할까,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도 일단 나를 위한 일들을 저질러 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로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야간강의를 시작했다. 나의 커리어와, 나의 숨 쉴 구멍을 위한 딴짓. 겸임교수라는 타이틀은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내세우기 좋은 명분이었다. 첫 학기엔 공진단 한약과 타이레놀의 힘을 빌었고, 두 번째 학기인 지금은 어떨지 나도 모르겠다.


점심시간엔 발레를 시작했다. 일 년 장기결제해 두고 한달에 서너 번이나 갈까 말까 하는 필라테스나 헬스 말고, 운동해야지 하는 의무감으로 하는 운동 말고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운동으로 결정했다. 억지로라도 열심히 나갈 수 있도록 학원비도 더 비싼 걸로.


원고를 쓰는 것도 저지레의 하나다. 이주에 한번 있는 ‘자기 계발을 위한 오후 휴가(4.5일제)‘에는 두 시간 시간을 내어서 원고를 쓰고 있다. 바짝 쓰고, 나머지 두 시간은 아이를 친구들보다 일찍 유치원에서 데리고 나와 좋아하는 스케이트 수업에 데리고 가야지. 그리고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를 보며 감탄해야지.



나의 저지레가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모르겠지만, 그 끝에 우리 가족의 웃는 얼굴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남편을 바라보는 나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떠오르기를. 저지르는 중에 가끔은 까무러칠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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