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좋아하는 다이노트럭스 장난감을 사기 위해 당근마켓을 뒤졌다. 다행히 두 달 전에 올라온 게시물이 하나 있다. 아직 안 팔렸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락을 했는데, 바로 답장이 온다. 일괄 만원.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지금은 유행이 지나 국내에서는 구하기도 어려운 장난감인데 무려 6개를 합하여 만원에 살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스피드! 문고리 거래를 신청하고 다음 날 바로 판매자님의 아파트로 향했다.
회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였다. 연희동이 근처여서 특유의 동네다운 정겨움과 힙함이 섞여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당근마켓 거래 왔어요” 하니까 경비 아저씨가 친절하게 주차바를 올려주신다. 평소에는 아파트 동을 찾기 편한 지상주차를 선호하지만 오늘은 비가 오니까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작은 단지의 아파트 지하주차장답게 내려가는 통로가 좁다. 차를 세우는 곳은 기둥이 많고, 한 대씩 세울 수 있는 자리가 많다. 낮이라서 자리가 많다. 한 대짜리 주차장에 자동차 뒤꽁무니를 넣으려는데, 기둥에 부딪힐 것 같아서 후진을 하다가 급히 브레이를 밟았다. 앞뒤로 몇 번 움직여서 무사히 주차 완료. 운전 경력이 십 년도 넘었는데 주차 실력은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운전은 결혼하고 나서 배웠다. 처녀 시절의 나는, 운전을 하지 않겠다는 주의였다. 당시 언니는 남들 대부분 그랬듯이 수능시험을 보고 고3 겨울방학에 운전을 배웠는데, 배우는데 꽤나 고생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봤고, 운전을 배우기만 하고 써먹지 않는 것도 봐서 굳이 돈 들여 배울 필요가 있나 생각을 했다. 더 결정적이었던 건 운전을 할 줄 아는 차 있는 남자친구를 만나면 모든 게 쉽게 해결되는데, 굳이 애써서 힘들게 배울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텔레비전에 나오던 기상 캐스터였고, 방송용 화장까지 있어 소개팅 승률이 아주 높은 20대 중반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자가용이 있는 남자친구’였다. 분당에 살고 있던 남편은 일산에 사는 나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두 시간 거리를 달려왔고, 데이트를 즐긴 후 나를 내려주고 다시 두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남편(당시 남친)은 나에게 운전을 배우길 권했다. 운전은 ‘자유‘라고 했다. 가고 싶은 곳에 어디든 혼자서도 갈 수 있다고. 지하철 역이 없거나 대중교통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차를 빌리지 않아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발이 되어 준다고 했다. 다섯 살 차이 나는 남편(남친)의 지혜를 아주 많이 신뢰하였던 나는 그렇게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의 차는 내 차지가 되었다. 결혼 후 새 차를 사면서, 아직 운전에 미숙한 내가 남편이 타던 차를 타기로 했다. 그 차를 타고 나는 자유롭게 여기저기를 많이도 돌아다녔다. 지역방송 출연을 위해 갈아입을 옷과 먹을 것, 굽이 높은 신발 등을 차에 싣고 운전을 해서 촬영장에 도착했고, 친구들 모임에 가는 날에는 근처에 사는 친구를 태우고 약속장소에 갔다. 차가 있어서, 모임에 합류하기 전에 단짝친구와 둘이 차 안에서 먼저 수다를 떠는 것도 가능했다.
운전은 어렵고 또 무서웠지만, 남편은 도로에서 가능한 천천히 운전하면 큰 사고는 없을 거라고 알려줬다. 면허학원에서는 시속 30킬로미터만 되어도 그렇게 무섭더니, 남편 말대로 도로에서 30킬로미터로 천천히 달리니 별로 무섭지 않았다. 뒤에 초보운전 딱지까지 붙이면 천하무적이었다. ‘다들 피해 가세요. 저는 천천히 가렵니다.’ 덕분에 별도의 도로 운전 연수 없이도 운전에 금세 적응했다.
문제는 주차였다.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남편 회사의 신혼부부 대출 1억 원으로 구할 수 있는 몇 동짜리 작은 아파트였다. 아파트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지하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 주차장도 기둥이 참 많았다. 회전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겠는데, 이 정도 각도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잠깐 품었다가 드르륵- 기둥에 차량 옆구리가 닿았다. ‘어떡하지어떡하지’ 하면서 이번엔 다시 앞으로 움직였는데 드르르륵- 아까보다 더 긁혔다. 범버카 운전하듯, 나 혼자서 기둥에 내 차를 드르륵- 드르르륵- 긁고 나서야 무사히 주차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원래 물건이 험해지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 (물건보다 사람이 중요하지 암만) 어려서부터 엄마의 잔소리를 많이 들었던 사람이었고, 남편은 아마도 나에 대한 큰 사랑(나의 이 정도 실수는 예측 가능한 범위였던 것 같다)으로, 원래 기둥을 긁었을 때 반대로 그냥 움직이면 긁을 수밖에 없다고 차분하게 설명해 줬다. 그리고는 중고차는 원래 긁으면서 타는 거라고 웃었던 것 같다.
내가 타던 남편의 차는 그렇게 그날부로 똥차가 되었다. 연애시절엔 남편이 떨이개를 트렁크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먼지를 털던 차였는데 말이다.
신혼시절, 우리는 돈이 많지 않았고, 장래도 그다지 유망할 게 없었던 젊은 부부였다. 나는 방송국 기상 캐스터긴 했는데, 프리랜서여서 언제 잘릴지 몰랐고 (무려 600:1의 경쟁을 뚫고 입사했는데 말이다) 월급도 같은 과를 졸업한 동기들 평균보다도 훨씬 적었다. 남편은 뛰어난 관상을 가진, 그러나 극히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부모님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지만, 부모님들의 도움 없이 우리 힘으로만 살아보고 싶던 독립심 강한 둘째들이었다.
아이를 언제 낳을까 하는 가족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았고, 매일매일 그저 즐겁게 살았다. 친구들과 남친여친, 혹은 부부 동반으로 만나서 놀고, 집에 오면 서로의 회사 얘기를 하고, 밤에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보다 잠들고, 낮에는 엄지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했다.
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지혜로워진 걸까. 부모라는 이름이 더해진 만큼 성숙했을까. 그때처럼 서로 사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