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하루: 오전 편

by 오전직업

워킹맘의 하루는 이렇다.


<오전>


아침 6시 30분에 맞춰둔 알람 소리에 일어난다. 누가 들을세라 후다닥 알람을 끄고, 옆에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살결을 느낀다. 그렇지만 깨지 않도록 아주 조심히. 아무런 진동이 느껴지지 않도록 몸을 일으켜 나온다. 씻고 화장을 하고 있으면, 네 살짜리 둘째가 “엄마 어딨어?“ 하면서 나온다. 눈도 못 뜬 채 화장실 문을 빼꼼 열어서 나를 보고 화장실 문 앞에 앉아서 기다린다. 아이의 기분 상태를 살피며 하던 화장을 후다닥 마무리한다. 손에 반지까지 끼면 엄마 모드에서 회사원 모드로 바뀔 준비 완료.


아직 시간은 6시 50분. 여유가 있다. 나가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를 안아주고, ”잘잤어?“하고 인사한다. 아이의 정수리 냄새를 맡는다. 아직 아기 냄새가 남아있다. 꿉꿉한, 정겨운, 포근한 아기 냄새다. 아이는 내 품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가 다리를 베고 다시 누워서 아침의 여운을 즐긴다.


7시. 이제 오늘의 준비물을 챙길 시간이다. 냄비에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받아 하이라이트 위에 올린다. 달걀 서너 알을 조심스레 넣고 포도의 유치원 가방을 꾸린다. 어제 설거지해 둔 수저세트, 양치컵, 물통에는 아이에게 보리차라고 설명하고 있는 배도라지차 티백을 넣어두고, 발레복이나 숲체험 준비물이 필요한지 챙겨본다. 사과 껍질을 깎아 두 통에 나란히 담는다. 오늘은 포도가 사과를 먹으려나.


일 년 전만 해도 ‘아침에 사과 한 알 깎을 여유만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일 년 만에 기도가 이뤄졌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간절했는데 막내가 네 살이 되면 절로 해결되는 문제였다. 환절기면 꼬박꼬박 감기에 걸리는 아이들 약을 타고, 만만한 둘째부터 먹인다. 아이는 이미 엄마 나랑 놀자하면서 부엌에 와있다.


7시 30분. 이제 본격적으로 나갈 차비를 할 시간이다. “오늘 어디 가는 날이야?“ ”어린이집!^^“ ”어린이집 가기 싫어“ 매일 아침이면 나누는 대화는 오늘도 반복이다. 나도 매일 누가 “회사 가기 싫지? 그래도 우리 같이 나가는 거잖아! ”하고 우쭈쭈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나는 회사 가는 거 좋아하지 참. 진심이 몇 프로쯤 담겨있는지 의심스럽지만, 어쨌거나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 분명한 어린이들은 외투를 입힐 때도 침대에 누워있기로 응수한다. 그럴 땐 웃기는 얘기나 즐거운 얘기로 주위를 환기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예전에 “엄마는 회사에 지각하는 게 너무 싫어. 그래서 지금 같이 나가지 않으면 엄마가 너무 속상해”라며 눈물로 호소해 봤는데,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아이에겐 내 사정을 봐달라는 읍소는 하지 않는다. 진지하면 할수록 공감을 못 얻는 방법이다. 화를 내는 건 오히려 역효과다. 내 몸이 피곤한 날에는 의례적으로 하는 “어린이집 가기 싫어”에도 짜증 난 목소리로 ‘또 시작이니’같은 대답이 나오는데, 엄마가 화났다는 걸 눈치채면 아이의 땡깡은 더 심해진다. ‘엄마 화났어‘가 아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된다. 아이에게 엄마는 늘, 한결같이 친절한 목소리의 사람이어야 하니까. 사실 아이가 요구하는 건 그게 다다.


잠든 척 하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말을 던지고, 아이가 웃으면서 대꾸하면 대 성공.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으로 나선다. 나와 남편이 아이 하나씩을 맡거나, 카트에 태워서 주차장으로 이동. 아빠와 작별인사를 서너 번쯤 한 이후에 등원길 출발이다. 일단 아이 둘을 카시트에 앉혀서 시동을 걸었다면 한시름 놔도 된다.




등원길. 아침에 준비한 이런저런 간식들을 건네준다. 등원길 모습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예전엔 포도가 ‘비요뜨‘에 꽂혀서 매일 아침 가다가 차를 세우고,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비요뜨를 사서, 미리 준비해 둔 그릇에 덜어, 건네주었던 적도 있다. 아직 둘째가 어려서 집에만 있던 시절에는, 일단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편의점에 들러서 초콜릿이나 우유를 사 먹고 어린이집에 가는 게 루틴이었던 적도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늘려보려는 아이의 수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받아주는 게 엄마의 역할인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등원시간은 하루 중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간이었다. 집중적으로. 8시 30분에 회사에 도착했는데,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은 늘 9시가 간당간당했다. 집에서 일찍 나왔더라도 가다 중간에 멈춰 서기도 하고 도착해서도 회사 어린이집까지 가는 절차가 복잡해서였다. 한동안은 편의점에서 아이와 둘이 있는 게 여러 사람들에게 자주 목격되어서, ‘한수정이 할 만큼 하고 있다. 본인은 일찍 왔지만 육아 때문에 늦게 올라오는 것이다.‘ 정도의 동정 어린 시선을 기대하기도 했다만, 그럴 리가. 엄연히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회사원으로 아이에게 이제 그만 가자고, 빨리 걸으라고 읍소와 협박을 번갈아 하다 보면 자괴감까지 들었다.


엄마와의 시간을 조금 더 늘려보고 싶은 아이에게, 너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는 것인데 왜 이해를 못 하냐고 화를 내며 설명하는 건 과연 옳은 방향일까? 아직 어려서 실수도 자주 하고 뭘 모른다는 이유로, 나의 지각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건 또 어떨까. 아이가 원하는 것 중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해 주는 게 나의 육아방식 또는 다짐이었는데, 등원길에 한하여 아이의 욕구를 꺾는 방법으로 나의 목적을 성취하는 건 또 어떤가.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방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믿어왔는데, 사실은 아닌 걸까.


직장을 옮겨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던 등원길 스트레스는, 둘째가 같이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 환경이 바뀌고, 파니랑 같이 편의점에 갔다가 원하는 걸 사주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첫째가 이해하게 된 덕분이었다. 한때는 가장 큰 스트레스였는데 아이가 크면 절로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렇구나.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어린이집 등원 전 해야 하는 일 중에, 매일 ’그 날의 증상‘을 기록하는 절차가 있었다. 매일 어린이집 어플에 접속해서 ’가족 중에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는지‘, ’아이가 열이 나는 등의 증상은 있는지‘ 등의 간단한 문항 몇 개에 ‘아니요’라고 체크하는 거였다. 딱히 어려울 건 없지만, ‘매일’ 어린이집 어플에 접속해야 한다는 것, 출근과 등원으로 정신없는 아침 시간에 체크하는 게 원칙이었다는 점에서 부담이 됐다.


남편에게 코로나 체크는 남편이 전담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남편은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없다‘며 전담 만은 거부했다. 둘 중 누구라도 어플에 먼저 접속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건데, 왜 본인이 맡아해야 하느냐는 게 남편의 주장이었다. 내 주장은 남편이 바쁘거나 못했을 경우엔 내가 할 것인데, 일단은 남편이 하는 걸로 정해두자는 거였다. 두 주장은 실질적으로는 누구든 체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일했지만, 부부 중 공식 담당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에서 형식적인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이 별거 아닌 문항을 두고 소리 높여 다퉜다.


돌이켜보면 나의 본심은 ‘등원을 나 혼자 알아서 하는데 아빠인 너도 뭔가는 부담을 가져야한다’는 것이었고, 남편의 본심은 ‘아이를 키우는 건 엄마로서 당연히 할 일이며 본인도 아빠로서 하원을 담당하고 있는데 왜 굳이 본인에게 뭔가 시키려고 하느냐‘였을거라고 생각한다. 별거 아니고, 별 차이도 없어 보이던 문제의 근원에는 서로 다가설 수 없는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코로나 증상 체크는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께 체크 요청을 받는 사람인 내가 당사자였고, 그래서 매일 아침 신호대기시간에, 등원하고 돌아서는 출근길에, 내가 했다.


만약 그때 내가 남편에게 “오늘도 까먹었어. 너무 속상해. 오빠가 좀 해줄 수 있어?”라고 살갑게 부탁했다면 남편은 내 부탁을 들어줬을까. 당시엔 그렇게 부탁한다는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방법이라도 고민하는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긴 것일까. 사실 별거 아닌 건 코로나 증상 체크 문항이 아니라 부탁하는 말을 꺼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큰 아이를 유치원에 먼저 내려준다. 아이는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다시 한번 나를 안는다. 이럴 때 시간을 끌면 감정이 더욱 북받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따라 내린 둘째 손을 잡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뒷모습으로 돌아선다. 아이들은 엄마가 기쁘게, 혹은 별거 아닌 듯이 돌아서면 본인의 감정도 별거 아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육아서에서 봤다. 이렇게 돌아서면 나의 마음도, 몸을 따라, 별거 아니구나~하고 생각하면 좋겠다.


회사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간다. 두 명 데리고 다니다가, 한 명만 데리고 가는 건 꽤나 수월하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올라가겠다는 고집도, 친구가 안겨가니 자기도 안아달라는 말도, 귀여워서 들어주게 된다. 첫째에겐 미안하지만. 엄마를 둘째 혼자 독점하는 오붓한 시간은 5분에서 10분 남짓이다.


이렇게 오늘 하루 가장 어려운 스케줄은 끝.


오늘 아침 간식은 힘을 좀 줘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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