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대하여

둘 째, 파니

by 오전직업

새초롬한 성격의 딸이 세 살이 되었을 무렵,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첫째에게 평생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임신을 계획한 것이라 딸이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이번엔 아들이 나왔다. 부모님들은 딸 아들 골고루 나왔다며 기뻐하셨다. 나는 뭔가 모르게 “할일을 했다”는 뿌듯함이랄까 시댁에 내 능력 중 하나를 “보여드린” 으시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부모님이 아들을 기다렸다거나,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지 하는 취지의 말을 일부러 조심하시는건가 싶을 정도로 아들 위주의 언급을 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 속 어딘가에 아주 오래 전에 들어왔던 남아선호사상이라는 이름의 생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은 딸과 생김새는 똑같았으면서도 눈에 띄게 다른 성격이 있었는데,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잘 웃는다.

아이는 눈만 마주치면 웃었다. 그저 미소짓는 게 아니라 까르륵 넘어가듯 웃었다. 유모차를 타고 한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시점이 되면 까르륵 웃었다. 그리고 한바퀴 돌고, 또 눈이 마주치면 또 까르륵. 아이를 웃기고, 놀아주는 일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아이패드로 영상을 더 보고 싶은데 엄마가 뺏어갔다던지, 자기 전에 사탕을 먹고 싶은데 안된다고 말했던지, 아무튼 마음이 상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때 기분을 바꾸는 방법도 아주 다양했다. 여러가지 방법이 웬만하면 다 통하니까! 목 주변을 간질간질 간질이면 웃음보가 터졌다. 시무룩하게 앉아있는 아이 옆에 서서 “준비, 땅~!”하고 달리기 시작하면 바로 일어나 웃으며 시합에 참여했다. ‘우리 애기 똑땅했어? 엄마가 꼭 안아주고 싶어’하고 얘기하면 위로해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정수리를 품에 들이댔다. 화가 나서 소리치자 ‘엄마 화났어'하면서 우는 표정을 짓길래 그 표정을 따라하자 또 웃는다.


기억력이 별로인건지, 감정선이 무딘건지 정확하지 않은데 확실히 육아에서 수월한 면이 있다. 똘똘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면 이런 느낌일까 싶기도 하다.


다만 덕분에 첫째와 달리 버럭 화를 잘 내게 된다는 부작용은 있다.


2.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애정표현을 한다.


생물학적으로 두 가지의 성별이 있는데, 살면서 한 번도 남성이 되어 본 적 없는 엄마에게 아들을 미지의 세계이다. 남성을 배우자로 맞긴 했지만, 남편과 한몸이 되는건 아주 잠깐인데다가 이성적인 생각이란 거의 하지 않는 순간이어서 아들을 내 안에 품었던 경험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나와 다른 성별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 뜻대로 대해도 될까. 응가를 하다가 쉬가 같이 나올 때, 변기에 앉은 채로 오줌을 뉘여도 되는 걸까. 사각팬티를 살지 삼각팬티를 살지를, 나의 디자인에 대한 선호만으로 선택해도 되는 걸까. 미지의 대상을 대하는 고민과 두려움이 있다면, 설렘도 있다. 설렘 포인트 중 하나는 아들의 애정표현 방식이다.


스스로 똥오줌을 못가리는 건 물론이고 두 발로 걷지도 못해서 기어다니는 두살 무렵. 아기를 재우기 위해서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 손으로 몸을 쓰다듬어 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다정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 모두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안심하며 잠에 들도록 하는 방법들이다.


둘째를 재우기 위해 방문을 닫고 들어가 이불 위에 누우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엄마와의 시간을 만끽했다. 이제는 자기 뜻대로 제법 움직이는 양손을 이용해 내 얼굴을 잡아 고정하고, 곧바로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대고 눌러댔다. 침 삼키는 것도 아직 능숙하지 못한 주제에, 침 묻은 얼굴로 꾸욱 꾸욱 내 볼을 눌렀다. 딸인 첫째도 엄마와 살결을 부대끼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이렇게 입술을 오래 마주치고 있던 적이 있었던가? 딸이 내 얼굴을 잡고 뽀뽀한 적이 있었나? 첫째땐 주로 내가 먼저 뽀뽀했던 것 같은데. 두살짜리도 성별이 남자라서 좀 다른건가? 아기와 뒹굴다 아기가 남자라는 걸 떠올리는 내 모습이 나도 웃겼다.


서서히 어린이 태가 나기 시작한 네 살 무렵. 손을 꼭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이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어제 책에서 봤던 몬스터가 되었고, 아이가 몬스터를 돌봐주는 설정이었다. “몬스터야 발톱좋아해? 내가 어린이집 끝나고 발톱 많이 사다줄까?” 이런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아이가 목소리를 줄여 속삭이듯 얘기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파니야 뭐라고?” 하고 물으니 잡고 있던 내 손을 놓고 내 앞에 마주서서 또 작게 속삭인다. 이번엔 키를 낮춰 앉아 눈을 맞추고 “뭐라고 했어?”하고 물어봤다. 아이는 수줍게 웃으며 “몬스터야, 사랑해.” 라고 말했다. 이렇게 앞에 마주서서, 얼굴을 바라보며 극적으로 고백하는 방법은 어떻게 생각해낸걸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꼭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잠들 때는 꼭 내 손을 본인 등허리부터 둘러 품에 꼭 안고 잔다. 백허그 하듯이.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갑자기 다가가 사랑한다며 안아주고, 가끔은 안을 때 두 팔에 힘을 줘서 아주 꽉 껴안는다.


영화 미저리가 왜 나왔는지 알겠다. 아들은 아기일때부터 이미 내가 지금까지 봤던 남자 중에 가장 멋진 ‘남자'다.


3. 겁쟁이면서 쎈 캐릭터만 좋아한다.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성역할이나 파랑은 남자, 분홍은 여자와 같은 구분은 오랜기간 쌓여온 사회의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 학교나 책에서 배우기로, 그래서 그런 고정적 성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딸과 아들을 낳고 보니, 사회에서 형성되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도 있기야 하겠지만 날때부터 조금 달랐던 특성이 살면서 더 강화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첫째는 마루 인형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보들보들한 인형은 좋아했다. 토끼나 분홍 인형이 물론 많았고 동물, 공룡 인형도 적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났을때 아무리 만져도 다칠 위험이 없는 인형을 가지고 놀기를 기대했는데, 둘째는 인형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둘째가 유독 좋아한 건 바로 포크레인이었다. 어디서 처음 봤는지도 모르겠는데, 언젠가부터 포크레인과 그 밖의 중장비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책도 중장비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고, 장난감 가게에 가면 포크레인을 크기 별로 사 모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장 먼저 한 말도 ‘포크레인’이었고, 잠들기 전에 가장 마지막에 한 말도 ‘포크레인’이었던 것 같다. 첫째 옷을 물려입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장난감이라도 좀 겹쳤으면 했는데, 각자가 좋아하는 장난감은 완벽하게 달랐다.


포크레인 다음으로 좋아한 건 공룡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공룡의 시기’가 왔다 간다고 하는데, 둘째는 세살 무렵부터 서서히 공룡의 시기에 입성했다. 친구들이랑 놀때도 다투는 걸 싫어하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하나의 답을 강요하는 질문을 던져도 '엄마랑 아빠'라고 꼭 중복답을 고르는 평화주의자 둘째는 공룡 중에서 ‘티라노사우스’를 좋아했다. 공룡의 왕! 티라노사우르스 크아~ 하고 흉내내기도 즐겼다. 공룡을 좋아하길래 공룡박물관에 데리고 가면 커다란 공룡을 보고 겁을 먹어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 겁쟁이면서, 좋아하는 공룡은 티라노사우르스, 그 중에서도 ‘큰' 티라노사우르스를 좋아했다.


힘이 센 아빠를 동경하고, 악당들을 다 무찌르는 큰 로보트(작은 로보트들이 합체한 최종형)를 좋아하는 둘째를 보며, 예전에는 파란색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이제는 누나가 입던 옷을 강요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아들은 역시 신기하다.




둘째의 이 모든 특성이 아들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별과 아예 무관하지도 않은 것 같다. 남자다운 성격을 가지고, 여기저기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다. 계속 사랑만 받으면서 클 수야 없겠지만, 사랑 없는 말과 관계에서 상처받게 되더라도 쉽게 회복할 수 있게 단단한 마음의 기반이 만들어지기를. 나의 사랑으로 그렇게 되기를, 아들을 가진 엄마로서 바라본다.



***네 살이 되어서는 좋아하는 공룡이 안킬로사우르스로 변했다. 예전에는 육식공룡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초식공룡이 좋다고 말하는게 너도 좀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그렇지만 안킬로사우르스는 뾰족뾰족 단단한 갑옷과 거대한 뼈뭉치 꼬리가 있어 티라노 만큼 센 공룡임엔 변함없다.


가성비 최고 다이소 포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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