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사람들과의 삶 1

기상캐스터에서 변호사로, 그리고 엄마로

by 오전직업

아이를 낳기 전, 내가 누리던 자유란 이런 거였다.


24시간 뉴스채널의 기상캐스터로 일하다가 결혼을 했다. 스물여덟이었다. 당시 결혼 적령기였던 남편의 지극한 사랑과 꾐,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이 결혼 결심으로 이끌었다.


결혼을 했지만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집에서는 이미 물리적으로 독립한 상태였고, 결혼하기 전이나 후나 경제관념은 별로 없어서 엄마가 해주던 많은 것들을 남편이 맡아주었다. 청소나 식사준비 같은 집안일은 소꿉놀이처럼 느껴졌는데, 특히 내 마음대로 집을 꾸미는 일은 퍽이나 즐거웠다.


결혼도 했는데 뭐, ‘기상 캐스터 일은 하다가 싫으면 그만두지 뭐‘ 하고 마음먹으니, 회사 생활도 한결 할만했다. 어리고 예쁜 후배들에게 프로그램이 넘어가는 거나, 인기가 많거나 수완이 좋아서 잘 풀리는 친구들을 보아도 배알이 덜 꼴렸다. 말도 안 되는 일로 군기를 잡는 선배가 있어도, 집에 가서 남편과 흉보면서 웃고 넘기면 그만이었다.


즐거운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시아버지와 통화를 하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아가 너의 직업은 오랫동안 할 순 없는 일이니까, 남편의 직장 뒷바라지를 잘해야 한다. 남편 옷도 잘 챙겨주렴.”


내가 일을 그만둬도 남편이 정년까지 열심히 직장에 다니겠지, 하는 생각은 나도 하고 있었으면서, 시아버지 입에서 똑같은 말을 들으니 마치 새로운 사실 같았다.


간과한 것이 있었구나. 내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면 그게 끝이 아니라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거였네! 내 맘대로 살아온 삼십 평생이었는데 내 맘대로 못하고 남을 지원해야 한다니. 결혼만 한 어린아이 었던 내가 놓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로스쿨에 갔다. 내 맘대로 살기 위해서.


로스쿨 공부는 물론 아주 어려웠지만, 노력하면 되는 일이었다. 익숙해진 일을 버리고 새롭게 선택한 일이었기에 의욕이 충만했다. 6년 동안 텔레비전에 나오면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기상 캐스터 타이틀을 이미 포기한 만큼, 배수의 진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첫 학기 바닥이었던 성적은 쭉쭉 올라서 졸업할 땐 한 손에 꼽힐 정도였고 3년 내내 장학금도 받았다. 생활비야 남편이 벌어다주긴 했지만, 다른 사람 도움 없이, 나 혼자 썩 잘 해냈다는 뿌듯함이 넘쳐흘렀다.


로펌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 소속인 사내 변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생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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