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사람들과의 삶 2

육아의 책임

by 오전직업

아이는 내 몸 안에서 자기 자리를 성큼성큼 늘려갔다. 나로 가득 차 있던 세계에서, 내 맘대로 되지 않고 급기야 내가 점점 사라지는 경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이는 내 기분이나 내 상황과 상관없이 본인의 리듬에 따라 움직였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진득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할 때 구역질이 나도록 만들고, 몸이 피곤해서 잠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두었는데도 막상 잠이 오지는 않게 만들었다. 충분히 조심하며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피가 쏟아져 나왔다. 별다른 수습도 못하고 그 자리에 누운 채 남편을 불렀다. 며칠 동안은 가만히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했는데, 특히 기분이 울적해질 때면 어떻게 알고 뱃속에서 둥둥 둥둥 춤을 추었다. 나도 모르게 가라앉았다가도, 의지와 상관없이 내 몸이 다른 생명으로 요동치는 걸 느끼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내 몸뿐 아니라 내 시간과 생활 모두를 한순간에 본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의지로 모유수유를 해내겠다는 엄마의 뜻대로 하루 종일 품에 안겨있다 보니, 먹을 때도 잘 때도 울 때도 내 몸에 붙어있길 원했다.


몸이 힘들어지자, 화살은 남편에게 돌아갔다. 나는 임신도 했고, 출산도 해서, 몸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아빠인 너는 누구보다 신체건강한 남자이면서 왜 나를 배려하지 않느냐가 주된 이유였다.


체력은 내 힘이나 의지대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지금껏 다 내 의지로 잘 살아왔다는 걸 뽐내며 살아왔던 나는 의지로 안 되는 일이 생기자 화가 났다. 왜 이렇게 힘이 들까, 왜 내 맘대로 못할까. 나에게도 화가 나고, 남들도 미웠다.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이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 왜 안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아주 작고 연약한 아이를 돌봐야 할 책임을 지고 혼자 세상에 떨어져 있는 불쌍한 엄마였다.


세상에 엄마가 나 한 명만 있는 건 아닌데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워킹맘 선배들을 찾아가서 방법을 물었다.


- 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 건가요. 너무 힘이 듭니다.

- 응, 그냥 내가 다 하는 거야.


오 마이갓. 비법은 없었다.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혹은 발버둥 치면서, 엄마로 살고 있었다. 내 아이니까, 내가 키우면서 사는 거지,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벗어날 수가 없는 거구나. 내가 뭘 명료하게 해결할 수 없는 거구나.


결혼 후 집안일도 딱 절반으로 나누기 어려운데, 육아는 애초에 나눠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부부가 고심 끝에 일의 난이도나 들이는 시간을 기준으로 육아를 분담한다고 해도, 직접 당사자인 아이가 싫다면 모두 도루묵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랑 잘래!‘ 하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날 재우기 당번이 아빠라고 하더라도 엄마가 그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육아의 첫 번째 책임이 엄마인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나자, 내가 담당하는 영역은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다. 엄마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남편도 안심이 되니, 마음 놓고 나에게 맡겨두는 시간이 많아졌다. 우연찮게도 남편이 직장을 옮기면서 남편은 일에 집중하고, 반대로 나는 회사 생활이 안정되면서 육아에 몰두하기 좋은 상황도 만들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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