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사람들과의 삶 3

내려놓으면 열리리다

by 오전직업

자포자기와 함께 정신승리에 도움을 준건 기브 앤 테이크의 마음가짐이었다.


부부관계가 심각할 때는, 이 상태로 이혼하면 아이에 대한 양육권은 당연히 나에게 온다는 생각이 버티는 힘이 되어 주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하고 넘어가지만, 평생 가정주부로 아이들 곁에 있은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일인 양 난리가 난다”는 다 큰 친구의 말도 큰 위안이 됐다.


이렇게라도 받아들이고 내려놓으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나를 최고로 사랑하는 작은 사람 둘을 얻었다. 내게 기대하는 것조차 ‘같이 있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과의 시간이다.


독박육아의 날. 퇴근 후 아이 둘을 데리고 놀다가 어두워질 때쯤 집에 도착했는데, 기저귀를 뗀 지 얼마 안 된 둘째가 차에 앉은 채 쉬를 했다. 아침에 들고 나온 간식가방과 내 핸드백, 바지가 젖어서 다리를 뻗대고 있는 둘째와 아이 둘의 겨울 잠바를 짊어지고 주차장을 달려 올라온다. 첫째가 둘째의 겨울 장화를 챙겨 들고 뒤따라와 문을 열어준다. 젖은 오줌이 블라우스를 적시는 것을 느낀 순간, 이렇게 안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블라우스고 뭐고 일단 지금 목표는 귀가.


집에 달려들어가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같이 목욕을 하는데 그저 웃겨서 웃음이 나온다. 쉬를 싼 채 안겨 올라온 둘째를 칭한 뻗정다리 뻗정다리~는 우리 셋의 웃음버튼이 됐다. 독박육아는 힘들지만 아이들과 찐으로 기억에 남은 이벤트는 이런 시간에 쌓인다. 누구에게 맡길 것도 없이 그저 닥친 일을 수습해 나가는 순간. 치우고 정리하는 건 나중으로 미뤄놓고 일단 지금 이 시간만 무사히 보내자 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래서 같이 놀이에만 집중하는 순간. 내려놓으면 열리리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는 말이 있다. 부부관계에서도 자녀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 같을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자기 전에 몇 번째 물통을 가져와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의 말을,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들어줄 것인가 하는 거다. 그런데 부부끼리 이기고 지는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아이가 다친다. 굳이 사랑의 크기를 자로 재어 이길 생각이 전혀 없는 아이에게, 어른인 내가 먼저 싸움을 걸 수는 없다.


물통을 가져오라고 했다가 식탁에 가져다 두었다가, 다시 가지고 왔던 그 아이는, 잠들기 전에 나의 얼굴을 만지면서 ‘미안해.‘ 하고 말한다. 마음이 다 녹아내린다. 그 다정함과, 사과하는 용감함에 감동하고, 어른이면서도 먼저 다 받아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눈물이 나온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작은 사람이 나의 아가이고,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다니. 이 밤에 생각지도 못했던 감정이 밀려온다.


나의 작은 사람들과의 삶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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