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기업과 사회는 쉬울까?

15년 후 세상

by 채현

AI 시대의 노동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해결은 없다. 개인이 어떤 노력을 하든, 기업과 사회가 직면하는 구조적 문제는 피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 차원만 다루려 한다. 기업이 겪게 될 문제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구조적 변화이다.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구조 자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기업은 더 이상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관이 아니다. AI는 수행 업무를 대체하고, 자동화는 운영 영역을 제거한다. 기업은 이제 최소한의 사람만 필요로 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입을 대량으로 뽑고 내부에서 경쟁을 통해 선발하는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기업은 선발의 기준을 잃었다. 과거에는 경험과 시간 속에서 인재가 드러났다. 그러나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5년 후를 위해 사람을 뽑는 전략은 실패 가능성이 높다. 기업은 즉시 기획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을 원한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업은 ‘검증된 경력직’을 중심으로 채용을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곧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경력직의 공급은 제한적이고, 수요는 증가한다. 기업들은 핵심 인재를 서로 빼앗기며 인건비를 올린다. 사람을 줄였지만 비용은 줄지 않는다. 오히려 증가한다. 자동화는 수행 인력 비용을 줄이지만, 핵심 인력 비용을 폭증시킨다. 기업은 인건비 구조의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대량 선발의 시대에는 전체 인건비가 낮았다. 소수 정예 선발의 시대에는 전체 인건비가 높다. 이것이 AI 시대 기업 인사 구조의 모순이다.


여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암묵지가 단절된다. 조직 내 경험과 기술은 대개 대량 채용을 전제로 축적되었다. 선배에게 배우고, 실패를 공유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문화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문서화할 수 없는 지식이다. AI 시대에 대량 채용이 사라지면, 이 암묵지는 이어질 수 없다. 핵심 인재 몇 명에게만 지식이 집중된다. 기업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잃는다. 특히 고인지 노동을 하고 있는 인력의 기술은 개인의 머릿속에만 남고 조직에는 남지 않는다. 인재가 이직하면 기술도 함께 사라진다.

기업은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한다. 해고가 어려운 환경에서는 ‘불필요한 인력’이 악성채권이 된다. 유지하는 순간 비용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인력을 보완할 시스템이 있었다. 수행할 업무가 있었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자동화는 수행 업무 자체를 제거한다. 해고가 어려울수록 기업은 채용을 중단한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한다. 이 회피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해외 이전, 외주화, 직장 폐쇄, 자동화 확대, 공간적 이동이다. 기업은 노동 문제와 충돌하지 않는다. 노동 자체를 선택지에서 제거한다.


이 변화가 사회에 미칠 파급 효과는 단순한 일자리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란 역할을 분배하는 구조다. 사람은 일을 통해 소속감을 갖고, 능력의 범위를 확인하며,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살아간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역할이 사라진다. 수행은 필요 없고 기획은 소수만 담당한다. 대다수의 사람은 일할 공간이 사라진다. 그러나 사회는 누군가가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붕괴되면 정치적 불안이 생긴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니라, 일을 할 수 없는 사회가 된다.

청년층은 특히 큰 피해를 본다. 해고가 어려운 사회에서 기업은 신입을 뽑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중장년을 보호하기 위해 미래 세대의 진입을 막는다. 채용은 줄고 승진 경로는 사라진다. 사회는 ‘진입 불가능 구조’가 된다. 중산층은 단절되고 세대 간 불평등은 구조화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취업 난이도가 아니다. 사회적 역할에 접근할 수 없다는 문제이다.

지역도 붕괴된다. 기업이 떠나면 일자리가 아니라 역할이 사라진다. 공장 폐쇄는 단순히 고용 감소가 아니다. 학교가 사라지고, 병원이 사라지고, 상권이 사라진다. 지역 공동체는 기능을 잃는다. 기업은 노동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지역 전체를 비워버린다. 기업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된다. 기업의 이동성과 자동화 기술이 결합하면, 한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이유가 사라진다.

이 문제의 핵심은 개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해력과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에게 대책은 없다. 하지만 사회는 대책을 가질 수 있다. 대책은 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역할을 재설계하는 방식이다.

역할은 일자리와 다르다. 수행이 아니라 참여이며, 성과가 아니라 판단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첫째는 공공 데이터 감시단이다. 지방 행정이 축적하는 데이터의 정확성을 시민이 주기적으로 검토하는 역할이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분류한 정보를 인간이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다. 일은 없지만 역할이 있다. 둘째는 지역 환경 기록자다. 센서가 측정한 공기·수질 정보를 보고 시민이 질적 의견을 붙인다. 수행 없이 기획과 평가를 분산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시민 평가 위원회다. 도시 계획이나 공공시설 투자를 결정할 때, 비전문가가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결정권이 아니라 검증권을 가진다.

넷째는 학습 데이터 품질 보완자다. AI 학습 데이터는 자동으로 구축되지만, 표본을 검사하고 기준을 조정하는 과정은 인간이 필요하다. 이는 일자리가 아니라 역할 분배의 방식이다. 다섯째는 지역 갈등 조정 시민단이다.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 등 사소한 갈등을 시민이 중재하는 방식이다. 전문성이 아니라 절차적 참여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공공 자산 우선순위 결정 참여자가 있다. 지방 예산을 어디에 쓸지를 시민이 결정하는 역할이다. 고용이 아니라 역할이며, 수행이 아니라 판단이다.

이러한 역할 분배는 대량의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소속감을 만든다. 역할이 없는 사회는 불안정하다. 사람은 일을 통해 소속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통해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낀다. 고용은 줄어들겠지만 역할은 설계할 수 있다. 역할을 분배하는 사회는 기술과 상관없이 재구성될 수 있다. 문제는 고용 정책이 아니라 역할 정책이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은 실패할 것이다. 역할을 설계하는 방식만 가능하다. AI 시대 사회는 일의 수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의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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