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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과 Jan 24. 2023

산딸기

누군가를 태워가는 여행

 누군가와 꿈에서 만나 그간의 묵은 갈등을 해결하거나 오해를 풀었던 경험이 있다. 당연히 실제의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님에도 나는 꿈속에서 만나 말하는 그의 상황과 사정들이 완벽히 이해가 갔다. 어쩌면 우리는 꿈에서 더 현실적인 것들을 만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해석하고 생각하는 그 사람 모습 그대로 어쩌면 더 깊고 복잡하게 꿈에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꿈에서 죽음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 속의 부끄러운 생각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꿈속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의 세계조차 조금도 가늠할 수 없이 사는데, 우리가 타인의 삶을 쉽게 해석하고 재단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는 것 같다. 마치 자기 자신의 입냄새를 맡을 수 없게 만들어진 인간의 비참한 운명처럼, 자기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 자신의 온전한 선택 하나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서로의 신념과 가치들을 헐뜯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 또한 코미디 같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결국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만 살아가게 돼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후회와 미련이라는 것은 떨쳐내고 없애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들이 후회와 미련들 뿐일 수밖에 없다. 뒤늦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이제야 이해되는 것들을 발견하면 아마 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방은 내 곁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비참한 운명이자 우리가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유일한 비결이 아닐까 싶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네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인 이삭은 늙고 명예퇴직을 앞둔 교수이다. 세상에선 학문의 하나의 성취를 이룬 사람이기에 칭송을 받지만, 정작 아들과 며느리에겐 형편없고 이기적인 가족 중 한명일뿐이다. 딱 우리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 아닐까. 영화는 이삭이 며느리인 마리안과 함께 차를 타고 본인의 퇴직식을 가며 일어나는 여정을 표현했다. 점차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이 여정은 이삭의 꿈과 환상들이 교차해 가며 진행된다. 해석은 어렵지 않다. 우리가 흔히 꾸는 꿈과 환상 같은 것들을 묘사한 것뿐이다. 이삭은 꿈과 환상을 통해 과거의 인연들을 만나가며 결국 현재의 내가 얼마나 볼품없는, 세상의 작은 이치 하나 모르는 늙은이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차를 태워준 이삭에게 고맙다 말하는 청년들.

 이삭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서 소박한 늙은이로 변해간다. 그리고 차에 우연히 태워줬던 젊은이들이 퇴임식을 축하해 주며 밤늦게 창밖에서 교수님 사랑한다는 말에 이삭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나도 모르면서 누군가에게 아는 척하며 잔소리 했던 시간들, 모르는 것들을 포장하느라 어려운 말들로 속여가며 글을 썼던 일들, 거창한 일들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내 주변의 작은 일들을 무시했던 오만한 시간들, 세월과 늙음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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