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교사로 일할 때 종강할 때쯤, 아이들과 타입캡슐 편지 쓰기를 하곤 했다. 처음으로 6학년을 가르쳤을 때, 시골학교에서 아이들과 했던 타임캡슐에 관한 기억이 좋기도 했고, 실은 1년을 마치며 뻘쭘한 마지막 주를 보내기에 타임캡슐 활동은 꽤 괜찮았다. 6~7년 후의 나 자신에게 글을 쓰기도 하고 미처 지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미래의 순간에 있을 친구들에게 쓰곤 했다. 이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예전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몇몇 아이들이 정말 만나는가 궁금해서 카톡이 오기도 했지만 따로 답을 하진 않았다.
집에서 누워서 낮잠을 자고 싶은 휴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청주의 도심에 있는 학교여서 아이들 수가 많았기에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했던 것처럼 과연 아이들이 와줄까 싶었다. 어쩌면 한 명의 학생이라도 올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학교로 갔다. 비 오는 어린이날, 학교 운동장은 쓸쓸하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조회대에 잠깐 올라가 빈 운동장 사진을 한 장 찍고 집으로 왔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굳이 이 약속을 지키러 온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의 일이란 사라지는 것들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라지고 소멸하는 것들에 대해 주목하고 말을 한다. 그러니 사실상 예술가들은 그 누구보다 삶과 죽음에 가깝게 지내는 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가가 하는 일들은 무언가 꺼림칙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극 중 주인공 첼리스트인 다이고는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장의사 직업을 택한다. 부인은 그가 택한 직업을 부정히 여기고, 친구들도 그를 부끄러워하고 거리를 둔다. 아마 죽음과 너무 가깝게 있는 그가 무언가 꺼림칙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시체와 죽음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묵묵히 염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예술가의 모습을 본다. 죽음과 상실에 가까이 머무는 예술가들. 장의사와 납관사 같은 일을 하는 이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겠다고 말한 윤동주 시인의 시 구절과 예술은 죽음을 준비하는 여로라고 말한 타르코프스키의 말을 떠올린다. 장의사처럼 묵묵히 인생의 이면에 담긴 죽음을 어루만져주며 곁에 있어준 그들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인생의 정해진 어떤 숙연한 삶의 규율을 마주치며 눈물이 나오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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