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말도 못 하고 트러블을 만드는 걸 원체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웬만한 행동과 말은 이해가 되고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사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 내게도 받아들일 수 있는 다름이 있고, 그럴 수 없는 다름이 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이 나를 뒤흔들 때 그와 내가 구별됨을 극렬하게 느낀다.
엄마와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엄마와 함께 하는 5번째 해외여행이다. 이번에 오키나와를 함께 간다고 하니 지인이 기겁을 한다. 자기는 못 한다고. 나도 그렇다. 항상 두 번은 못 할 짓임을 깨닫고도, 마지못해 여행을 가게 되는 이유는 뭘까.
오늘은 다름이 같음으로 수렴되는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친구와 여행을 가면 친구도 돈도 시간도 잃는다는 말이 있다. 여행이 항상 순탄하게 굴러간다면 그럴 일이 없겠지만,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돌발 상황과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서면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
3박 4일 내내 우리는 질리도록 걷고 헤맸다. 공항버스를 예약했는데 출발 시간이 다 되도록 타는 곳을 찾지 못했던 일, 날씨가 너무 안 좋은데 렌터카도 없어서 꼼짝없이 숙소 근처에서 이틀을 보냈던 일, 정류장을 착각해 잘못 내릴 뻔한 일, 마땅히 먹을 만한 식당이 없어 거리를 한참 돌아다녔던 일..
이렇게까지 일이 안 풀리기도 참 어려운데. 시간 내서 돈 써가면서 하는 고생은 참 힘들다. 그런 점에서 엄마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나 똑같을 것이다.
엄마는 말했다. 나도 이제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라 이전처럼 꼼꼼하게 여행을 준비할 수가 없고, 엄마도 예전 같은 체력이 없어 모든 상황을 유도리 있게 넘어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내가 좀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예민해지고 짜증을 내는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누적되면 이번 여행은 망했구나, 하는 자조 어린 생각과 애초에 같이 여행을 오면 안 됐다는 단순한 해결 방안으로 생각이 향한다. 나와 참 다른 사람이구나. 달라서 너무도 힘들구나.
참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날 때 즈음에는 힘들었던 기억이 모두 아련해진다. 한껏 끓었던 마음이 한 김 식은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 예민했을까, 남은 여행은 꼭 행복한 기억만 가져갈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해야지, 하는 것이다. 사람 참 간사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 며칠 지난 지금, 나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엄마에게 미안함과 연민을 갖는다.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사건을 바라보니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더라.
그치만 사람은 참 한결같아서 다음 엄마와의 여행도 1인칭일 것이고, 여행이 끝난 후에야 3인칭으로 모든 것을 감싸 안을 것이다. 이런 여행을 5번 해봤기 때문에 안다.
가족과는 떨어지면 애틋하고, 만나면 싸운다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겠지.
1인칭의 고유함과, 3인칭의 포용력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