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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다람 Oct 25. 2024

#S01

똑같은 대본의 뮤지컬도 어떤 배우가 등장하느냐에 따라 그 감동이 다르다. 최근 내 인생에 있었던 장면 몇 가지를 나열해보려 한다. 그 장면에 읽고 있는 당신을 대입해보면 나와 당신이 얼마나 고유한 지 알게 되지 않을까.



만원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 파업이다. 파업을 하는 줄도 몰랐는데 개찰구 앞까지 이어진 줄을 보고 난 후 내 마스크 안은 소리 없는 괴성으로 가득 찼다. 줄 서서 계단을 내려갔는데 스크린도어 앞은 더 심각했다. 네 줄 서기를 넘어 줄이라곤 없어 보이는 광경 앞에서 조용히 헤드셋을 꺼내들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말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여기 있는 그 누구라도 딱히 이 상황이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저마다 키도 다르고 불쾌함을 담는 그릇도 다르다. 내 속으로 빙글빙글 맴도는 볼멘소리도 버거운데 남의 불평까지 들으려니 그냥 집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댓글을 달았다. 누군가 “좀 내렸다 타지, 끝까지 안 내리네.”라고 말하면, ‘근데 승강장에 서 있을 공간이 없음’이라고 댓글을 다는 식이다. 내 맘속 댓글에는 심의도 규정도 없다. 댓글을 달았을 때 성난 답글이 달리지도 않는다. 단지 집에 돌아온 후에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러워지는 것 말고는.

기다림 끝에 탔다. 아슬아슬하게 끝에 서있다. 더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없고 문이 닫히면 옷자락이 찡길 수도 있겠다. 옆에 탄 아주머니가 팔을 뻗어 나를 눌러주었다. 짧은 그 몇 초 동안 평범하지만 가장 든든한 팔을 진하게 쳐다보았다. 눈 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내 옷자락과 가방은 문 안쪽으로 넘어왔고 문이 무사히 닫혔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적어도 이 아주머니는 댓글을 달지 않는 사람이 분명하다. 머릿속 댓글을 다 삭제하고 난 뒤 나는 지하철에서 비로소 내릴 수 있었다.



소울푸드를 먹으며

룸메에게 오늘 집에 있느냐고 물었다. 안 온다고 하네. 누구한테 털어놓거나 술을 입 안에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날. 하는 수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아 혼자 저녁을 먹었다. 숟가락을 몇 번 뜨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옷에 자켓만 걸치고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 불닭볶음면을 사러 간다. 양말도 안 신고 슬리퍼를 신었는데 발이 너무 시려워 후회막심이다. 잔뜩 움츠린 어깨를 팔로 감싸 안고, 발가락은 오므린 채로 뛰어간다. 답은 정해져 있는데 라면 매대 앞에서 고민한다. 새로운 게 있나, 지금 나를 만족시켜줄 만한 게 있을까 하면서. 구관이 명관이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뜨겁고 매우니까 미쳐버릴 것 같다. 혀랑 위장을 학대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중이다. 입술이 퉁퉁 붓고 립 라인 바깥으로 주황 물이 들었다. 손톱에 봉숭아 대신 불닭을 올려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옛날 모습이 떠오르는데, 항상 불닭을 먹으면 고통스럽고 배가 덥수룩하여 “다시는 불닭 안 먹어!”하고 다짐했다. 이제는 안다. 내 인생에 이런 귀여운 일탈 정도는 필요하다는 거. 이 모든 것은 스트레스를 불태우는 성스러운 제례의 일부이다. 먹으면서 넷플릭스 드라마 하나를 정주행한다. -> 키를 연타한다. 15초씩 넘기며 자막을 훑는 것이다. 그래야 오늘 밤 안에 다 볼 수 있으니까. 다음 시즌을 예고하며 찜찜하게 드라마가 끝이 났다. 물론 욕을 하면서도 다음 시즌이 나오면 하루 만에 정주행할 것이다.

스트레스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스스로 해소하는 이 멋진 어른의 시간이 후회가 되면, 눈을 질끈 감으며 되내인다. 하루쯤은 막 살아도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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