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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Jul 04. 2022

슈베르트, 즉흥곡 3번 D.899 Op.90 No.3


같은 선생님께 레슨을 받은 지 6개월이 됐다. 성인 레슨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 좋다는 선생님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주신다. 맞춤형 레슨 덕에 곡을 알아가고 완성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매번 대충 쳐라, 열심히 치지 마라, 악보의 한 음표도 놓치지 않고 다 쳐내겠다는 마음을 버려라, 등등 같은 맥락의 이야기는 꾸준히 듣지만.


요즘엔 한 달 넘게 슈베르트 곡을 치고 있다. 원래도 좋아하는 곡이지만, 5월에 다녀온 임동혁 리사이틀에서 앙코르로 들었던 기억이 강렬했다. 그래서 레슨 곡으로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Op.90의 3번을 선택했다. 사실 임동혁은 그날 1~4번을 모두 쳤는데, 2번과 4번은 이미 배웠던 곡이라 3번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슈베르트의 삶은 짧고 강렬하나 비참했다. 31년의 생애 동안 가난은 지겹게 따라다녔다. 그런 와중에 작곡한 곡들은 모두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지니고 있다. 혹자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처럼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내야만 했던 곡이 아니기에 슈베르트 자신을 온전히 음악에 드러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래서 더욱 서정적이고 낭만적일 수 있었다고 말이다.


즉흥곡 D.899 Op.90은 총 4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1~4번 모두 피아노 학원 좀 다녔다 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쳐봤을 곡이다. 어느 곡을 듣더라도 멜로디 라인이 또렷하고, 또 그렇게 분명히 들릴만큼 아름답다. 슈베르트는 피아노를 잘 치는 편이 아니었고 죽기 1년 전에야 피아노가 생겨서인지 피아니스트들이 치기에 편한 곡들을 만들진 않았다고 하는데(특히 방랑자 환상곡), 즉흥곡은 그런 부분들이 현저히 적다 보니 취미생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는 듯하다. 게다 양손이 다 바쁘진 않고 주로 오른손만 많이 바쁜데, 멜로디는 기가 막히니 엄청 잘 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3번 연주의 핵심은 주선율 이외의 음들이 거슬리지 않게 쳐야 하는 것이다. 주선율은 간단하기 그지없는데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음표가 굉장히 많다. 모두를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치면 뭘 노래하고 있는지 모르는 지저분한 음악이 되어버린다. 내성들을 정말 내성처럼 쳐내는 건 참으로 어렵다. 그러면서 가끔은 왼손도 살려야 하고 다시 오른손에 집중해 멜로디를 들리게끔 하고 페달도 지저분해지지 않게 신경 쓰고. 게다 플랫이 무려 6개나 붙은 곡인데 중간중간 더블 플랫과 내림표가 붙어있는 음들이 있어 악보가 직관적이지도 않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피아노를 잘 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감성은 그다음 문제, 아니 감성마저 철저히 계산해야 좋은 연주 끄트머리라도 갈 수 있지 싶다. 피아노는, 치매 예방에 탁월한 취미임에 분명하다.






* 얼마 전 임동혁의 소속사에서 앙코르로 연주했던 즉흥곡 3번 영상을 올려줬습니다. 연주자의 동의 하에 올린 것이니 본인의 기준에 못 미친 연주는 아니었나 봅니다. 첫음이 울린 순간부터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게 그저 나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은 아니라 생각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매일 듣고 또 들으며 더위마저 사랑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잘 안 되네요ㅋㅋ)


https://youtu.be/4_E-VyWdc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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