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O의 연주에 반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현의 시작에 관이 더해지고 모든 악기의 소리가 들렸을 때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 오케스트라는 이런 소리를 내는구나.' 옛날 우리 엄마가 정성껏 만들어주신 쿠키가 떠올랐다. 아주 매끄럽지는 못한, 살짝 우둘투둘한 동그라미. 정성과 시간과 마음을 듬뿍 담은. 그 쿠키 같은 소리가 들린다. 내실 있는 단단함이다.(굳이 덧붙이자면, 미국 오케스트라에서 느껴지는 얄미울 정도의 매끈함이 없었다는 거다. 그렇다고 독일 오케스트라처럼 둔탁하면서도 때로는 섬뜩하게 날카로운 느낌도 없고.)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에선 하늘에서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었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위를 날아가는 커다란 새가 연상되며 삶은 결국 그 바다처럼 그저 흐르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상기시킨다.
바르톡 중국의 이상한 관리 모음곡에선 기괴하고 아름다운 재미를 들려줬다. 모든 악기가 각자 소리를 내지만 놓칠 수 없을 만큼 유기적으로 얽혀 재미를 준다. 가장 섹시한 클래식 곡, 죽기 전에 꼭 한번 들어야 할 곡, 이 모든 별명이 이해된다.
조성진은 조금씩 변하는 것도 같다. 세공된 유리알 같은 연주 대신 나석을 깎아내는 과정을 보여준 연주였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이란 곡 자체의 특성을 차치하더라도, 올해 들었던 두 번의 연주가 모두 비슷했다. 프랑크 소나타를 같이 한 정경화 선생님이 조성진에게 "천둥같이 친다, 저렇게 분노를 표현하는 연주는 처음 봤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아함과 유려함에 서늘함이 깃든 연주는 듣는 사람에게도 고민할 여지를 남겨주어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