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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Feb 10. 2022

드뷔시, 렌토보다 느리게 L.128

100일 글쓰기 - 23


"La plus que lente", 렌토보다 느리게.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작품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곡은 아니고, 왈츠이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느리기 때문에 춤곡의 느낌은 덜하다. (렌토는 "대체적으로 느리게" 연주하라는 빠르기표다.)

인상주의는 지나가는 찰나의 이미지, 색채 등을 잡아두고 느낌을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다. 강력한 서사나 감정이 뚜렷하지 않은 대신 떠오르는 순간을 매력적으로 묘사한다. 흩어지는 바람, 흐르는 물과 같은 자연의 움직임을 청각으로 재현해낸다. 드뷔시, 라벨이 대표적이다.

첫 음이 울리며 문이 열린다. 살포시 열린 문틈으로 삼삼오오 모여 서로를 탐색하는 청춘들이 보인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 겨우 한발 떼었을 때, 곁눈질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느껴진다. 상기된 젊음의 뜨거운 몽롱함이 가득하다. 친구들에게 톡, 등 떠밀려 나온 수줍은 여인과 그 앞의 말간 청년이 드디어 손을 잡는다. 느린 리듬에 맞추어 한 발자국씩 움직이며 가까워졌을 때 건네는 말 한마디, 멀어지며 눈 맞춤, 그렇게 알아간다.

또다시 울리는 음에는 음울함이 가득하다. 헤어지는 연인의 마지막 왈츠다. 가로막은 운명 앞에 마지막 손을 놓기 위한 의식이다. 당신과의 사랑은 이룰 수 없지만, 그럼에도 행복을 빌어주는 우아한 이별이다. 눈물을 흘릴 수도, 아픔을 드러낼 수도 없는 갇힌 슬픔을 그저 삭이기 위해 발을 움직이고 손을 따라간다. 끝음의 가벼움은 미련을 여기에 두라 이야기한다.

전자는 20대, 후자는 60대 피아니스트의 연주다. 같은 곡이지만 둘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싱그러움과 원숙함은 좋다 나쁘다가 아닌 희열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쪽에 취해 뛰어가고 저쪽에 취해 비틀거린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드뷔시는 어떤 인상을 그렸는지 궁금하다. 설렘인지 후회인지, 아니면 둘 다 아니었는지 알고 싶다. 비가 오는 날에도 맑은 날에도, 언제고 잘 어울리는 이 곡에서 보여주려 한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굴러가는 멜로디에 각자 상상을 더하라는 것은 아니었나. 모르겠다.






* jtbc 고전적 하루에서 조성진의 연주입니다. 세련된 청년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https://youtu.be/3DN76zWFQEk


**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연주입니다. 이미 완성된 대가와 열심히 발전 중인 피아니스트의 비교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다름을 발견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https://youtu.be/YybmGcTFf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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