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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Feb 07. 2022

슈만, 유모레스크 Op.20

100일 글쓰기 - 20


슈만의 유모레스크라는 곡이 있다. 독일어로 유머, 말 그대로 재미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이 곡을 들으면 1분도 안 되어 화를 내게 된다. 혹자는 독일식 유머라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했다 생각하면 그래도 좀 참고 들을만하다.

이 곡을 처음부터 즐겨 들었던 건 아니다. 재작년 조성진 리사이틀에 가기 전 프로그램 예습 차 듣다 끝까지 못 듣고 헤맸기 때문이다. 분명 슈만이 정신병을 얻기 전 쓴 곡인데 듣고 있는 내가 왜 미칠 것 같은지 머리 쥐어뜯기를 수십 번 하다 결국엔 포기하고 가서 듣기로 했다.

꽉 찬(물론 코로나라 실제로 가득 찬 건 아니었지만) 공연장에 불이 꺼지고 피아노에만 조명이 비춘다. 연주자가 나오고 사람들은 기대에 부푼 박수를 보낸다. 박수가 멎고 공연장의 모두는 긴장한다. 의자에 앉아 손수건으로 건반을 스윽 닦고 툭, 저래도 되나 싶게 손수건을 피아노 안쪽으로 던진다. 숨 막히는 짧은 정적 후 손이 올라가고 드디어 첫 음이 울린다.

고요한 적막의 밤이다. 적당한 바람이 분다. 어둠 속 물결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첫 음은 달빛으로 호수에 떨어진다. 빛은 리듬으로, 리듬은 소리로, 종내는 노래로 물을 따라 번져 나간다. 노래는 호수를 얼음으로 만들어 외로운 스케이터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 봄꽃과 연둣빛 나무들 사이 보물 같은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새들이 지저귀게도 하며, 자연의 무서움을 일깨우듯 뜨거움을 내뿜게도 한다. 끊이지 않는 음들은 끝내 자연을 빗대 인간의 삶을 토로한다. 아름답지만 외롭고 재밌지만 슬프며 아프지만 괜찮은 것이 인생이라고.

피아니스트의 힘인지 원래 곡이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음악이 위로의 손을 건넸을 뿐이다. 나는 여태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번씩 음악 속에 끌려들어 가 소용돌이 속에 몸을 맡기다 올라온다. 순간의 휘몰아치는 감정에 올바로 서있기 힘들지만 끝이 있다는 걸 알아 괜찮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고난에 주저앉고 싶음에도 버티다 보면 언젠가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유모레스크 속 유머는 인생 전체라는 생각이 든다. 역설과 반어 그리고 모순이 가득 찬 삶이 유머 그 자체 아닌가. 묵직하게 묻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도 듣는다.






* 2021년 6월, 루르 페스티벌에서 조성진이 연주한 유모레스크 영상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무관중 온라인 콘서트로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날 연주가 제가 들었던 조성진의 유모레스크 중 가장 좋았어요.
https://youtu.be/hEUEjXbgY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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