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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Jan 30. 2022

내 장례식장의 음악은?

100일 글쓰기 - 12


오늘 하루 자유부인이다. 남편과 아이는 먼저 시집에 갔고 나는 하루만 쉬기로 했다. 집집이 사정은 다 다르니까. 말하자 들면 구구절절, 다들 그리 산단다. 그렇다고 또 별 건 아니다. 그냥 남편이 이제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잘 보내게 된 덕이다. 아마도 재택 하면서 하루 종일 동동거리는 나를 보고 들은 것들이 컸던 모양이다.

○○님이 생각 나 양희은의 ‘그러라 그래’를, □□님을 떠올리며 상호대차 서비스로 빌렸다. 내가 사는 곳은 관내 도서관들이 모두 상호대차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지만 책 한 권 때문에 오가는 사람들이 생길까 같은 곳에서 2권을 빌려 집 앞 도서관으로 수령지를 신청했다. 열람실에 앉아서 보는 여유가 그립지만 대출해주시는 사서 선생님의 따스한 눈웃음이 고마워 괜찮다.

얼마 전 장례식에 어떤 음악을 틀고 싶냐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쇼팽의 장송행진곡, 다양한 곡들이 나왔다. 다들 상식선에서 떠오르는 곡들을 이야기하던 와중에, 내가 “라데츠키 행진곡을 틀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순간 정적이 일었다. 3초 뒤 와글와글, 왜 그런 생각을 했니, 죽고 나서 까지 특이하려 그러니, 등등 온갖 질문이 쏟아졌다.

초등학교 4학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들리던 어른들의 곡소리가 괴기스러웠다. 우는 것도 소리 지르는 것도 아닌 속을 긁어내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아직까지 귓가에 선명하다. 몇 년 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엔 염불 테이프를 틀었다. 자식 손자와 조문객까지 염불 들으며 기도하고 절하고, 각자 다른 종교의 대통합이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졌다. 나중엔 3일 내내 쉬지 않고 틀어 늘어지기까지 한 저 염불은 대체 누굴 위한 것인가 생각했다.

양희은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모습으로 영정사진을 삼고 싶다 했다. 스물일곱, 고민은 많고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나를 알아가고 보듬을 줄 알았던 그 시절이 아름다웠다 말하며 그때 찍은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해야겠다 한다.


“바람처럼 스쳐 지나는 한평생, 기력이 쇠한 모습이나 나이 든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육신의 옷을 벗어놓고 가는 길, 돌아볼 때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웃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라 그래」, 양희은, 162쪽)


나는 내 죽음이 슬픔으로 남는 게 싫다. 기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얘는 살아서도 독특하더니 죽어서까지 그런다, 뭐 하나 평범한 게 없어, 라며 깔깔 웃어젖히고 집에 돌아갔으면 싶다. 그렇게 유난 떨더니 팍 죽어버렸다며 고소해하는 사람들, 내 가족 중 누군가 때문에 억지로 온 사람들도 쭈뼛거리지 말고 행진곡에 맞춰 어리둥절하게 들어와 혼을 쏙 빼고 나가면 어떨까 싶다.

재미있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는 내 인생의 목표처럼 마지막도 한없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내 말을 안 들어줘도 어쩔 수 없겠다. 지금부터라도 남편과 딸에게 잘 이야기해 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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