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싶은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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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목표는 단순하지 않다. 우선 지식의 이해에 일차적인 목표가 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가치 및 태도의 변화를 이끄는 것에 중점을 둘 수도 있다. 교사가 어떤 지향점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수업의 형태 역시 다양해질 수 있다.
어떤 논문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환경과 관련된 글을 읽게 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구분하고, 수업을 마친 후 나가면서 받은 종이를 버리게 했다. 그러자 환경 글을 읽은 집단의 분리수거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수업이 인간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며, 수업의 목표를 어디까지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중학교 1학년은 자유학년제로 구성된다. 자유학년제로 넘어가기 직전에 휴직을 해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자유학기제를 떠올리면 어느 정도 짐작은 된다. 교과 시간을 빼 주제 선택과 예술 선택 수업을 만드는데, 문제는 모든 게 교사 개인의 역량에 달려있다 보니 천차만별의 수업이 나온다.
1학년을 주로 들어가던 나도 당연히 주제 선택 수업을 맡았는데 어떤 해엔 인권수업을, 또 다른 해엔 기후위기 수업을, 시류에 맞는 주제를 택해 새로운 수업을 구상했다. 그때마다 가장 큰 고민은,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걸 얻게 되길 바라느냐였다. 예를 들어 단순히 인권의 개념에 대해서만 가르칠 것인지, 인권을 부당히 침해당한 수많은 사례를 어디까지 소개할지, 인권을 침해당했을 땐 어떠한 구제방법이 있는지, 마지막으론 실제 함께 참여하는 실천까지, 교사 한 명의 선택에 따라 경험하는 깊이와 너비가 매우 달라진다. 교과내용을 가르칠 때보다 더 부담스럽고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갈수록 내 지식은 구닥다리가 되어가는데, 해야 할 수업은 더 새로워진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 가치와 태도의 변화까지, 수업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거기에 최소한의 인간다움도 같이 가르쳐야 하니,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을 적당한 곳에 끼워 넣는다. 없는 짬을 내 연수도 참여하고 강의도 들으며 뒤처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동시에, 논문의 연구는 위안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수업도 어떻게든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는다. 내 제자 중 단 한 명이라도, 아주 조금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오늘도 책을 뒤적인다. 괜히 논문들도 찾아보고 잘 읽히지 않는 원서도 한 번씩 눈길을 준다. 언젠가부터 글씨만 읽고 글을 읽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그래도 뭐 하나는 남겠지라는 심산으로 본다.
나는 어떤 수업이 하고 싶은가. 그에 대한 답은 언제쯤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