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가면

100일 글쓰기 - 54

by 모사가


부모님은 부산에서 나고 자라셨다. 대학 때 상경한 후로 서울에서의 세월이 더 길지만, 말투에는 여전히 20년 남짓의 부산살이가 진하게 남아있다. 덕분에 나도 나름의 바이링구얼이 됐다.

방학마다 부산에 내려갔다. 기억나는 첫 장면은 다섯 살 추석 연휴,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이다. 좌석을 두 개밖에 못 사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 타야 했다. 6시간 넘게 걸리는 무궁화호에, 입석 승객까지 가득 찬 기차는 어린 눈에도 제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대전쯤 왔나, 자꾸 팔걸이에 앉아 자리를 침범하는 아저씨의 엉덩이 때문에 화가 잔뜩 난 엄마는 "아저씨!"하고 소리를 질렀다. 허 참, 헛기침을 하는 아저씨에게 억센 억양으로 속사포처럼 말하던 엄마가 멋져 보였다. 아빠는 함께 부리부리한 눈으로 매섭게 쏘아보곤 엄마와 자리를 바꿨다. 마지막으로 "모사가야, 이쪽으로 편하게 앉아. 여기까지 우리 자리야!"라고 날 앞세워 일침을 날렸다.

새마을호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빠는 대전역에서 항상 내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가락국수를 사 먹고 재빨리 돌아왔다. 가끔은 나를 놀린다고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들곤 다른 칸으로 올라탔는데 그때마다 너무 놀라서 엄마한테 어떡하냐고 소란을 피웠다. 무덤덤한 엄마의 표정에 상처받으려는 찰나, 아빠가 짠하고 나타나 "놀랬나?" 물으시면 콩닥거리던 심장은 제자리를 찾았다. 아빠 안 가면 안 되나요? 마음으로만 물었다.

차를 타고선 화장실만 급하지 않으면 늘 추풍령과 칠곡휴게소에서 쉬었다. 추풍령에선 소백산맥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칠곡에선 거의 다 왔다는 걸 알았다. 엄마의 정성이 가득한 유부초밥과 우동이나 라면으로 먹는 점심도 좋았다. 생각이 복잡했을 부모님과는 달리 나는 소풍 같기도, 여행 같기도 해 마냥 즐거웠다. 형광펜으로 길을 칠해놓은 도로지도를 페이지 맞춰 넘기는 재미가 쏠쏠했고, 갈 때마다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는 아빠는 신기했다.

올해로 95세가 되신 외할아버지와 일부 친척들은 계속 부산에 살고 있다. 여름, 겨울 두 번이 던 게 한 번으로 줄긴 했지만 여전히 부산에 간다. Ktx를 타고 내려 달라진 부산역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나를 업어주시던 할머니의 좁지만 따뜻한 등이, 꿀벌이 무서운 손녀를 위해 쑥을 태워 향을 피워주시던 할아버지의 거친 손이, 엄마의 과거를 폭로해 모두를 웃겨주시던 외할머니의 입담이 떠오른다. 시골집, 단독주택, 옛집은 사라지고 최신형 주상복합으로 향하려 발을 뗀다.

지금만큼은 나도 부산 사람이다. 택시 문을 벌컥 열고 묻는다.


"아이씨, 타도 됩니꺼?"





* 오늘 아침, 에코브리지(ft.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장면들을 적어보았네요. 좋은 노래는 함께 들어야 더 좋더라고요. 살짝 놓고 갑니다. 운치 있는 하루 보내세요:)

https://youtu.be/bLluWSvOr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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