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철학, 그리고 공부
100일 글쓰기 - 69
예술은 무엇인가. 대학시절 들었던 미학 수업의 가장 큰 주제와 질문이었다. 학생들이 이런저런 정의를 내리면 교수님은 또다시 이런저런 논리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생각을 확장하고 유연한 사고와 열린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그 여파가 음악계에까지 미치고 있다. 푸틴의 측근으로 알려진 연주자들이 교체되고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퇴출 위기를 맞이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의 러시아 보이콧이 이어지고 있다. 음악계 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러시아 출신 인사들의 잇단 사임과 러시아를 비판하지 않는 중국에서의 유명 전시들이 취소되고 있다.
예술인들의 이런 행보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한 명의 향유자의 입장에선 안타까움이 들기도 한다. 단순히 더 많은 예술작품을 더욱 다양한 예술인들을 통해 음미하고 싶다는 이유로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 미술도 미술 그 자체로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예술은 향유하는 사람의 것인가, 아니면 실행하는 사람의 것인가. 향유자는 예술은 그 자체로 초월한 무언가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지만, 예술인이라면 신념이나 성향을 내가 가진 도구로 표현해야 할 의무를 지니기도 한다. 어느쪽의 예술이 우선이냐를 따지긴 어렵지만 내포된 의도를 읽어내는 행위의 필요 여부를 결정할 순 있다.
또한 예술이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에 목적이 있느냐, 또는 예술 안에 생각을 담고 표현으로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기능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작과 함께 아름다움 그 자체의 미적 경험이 경시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는 무엇인지, 또 미적 경험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깊이 고민해 볼만한 주제다.
앞의 두가지에 더해, 개별적 인간의 사유에서 출발한 예술이 과연 가치중립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애초에 인간이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활동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가능한지, 만약 가능하다면 그때의 감상은 무엇인지 정의내릴 개념이 있어야 할테다.
이 생각의 끝은 결국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같은 굉장한 철학적 질문의 뿌리로 이어진다. 진리와 도덕은 같은 듯 다르고, 보편은 실용과 구분되나 비슷해보인다. 그러기에 깨어있는 머리와 날카로운 눈이 필요하다.
공부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낀다. 대학시절의 반짝임은 세월과 함께 무뎌졌다. 요리조리 반박하고 토의하던 재미를 찾기엔 아는 게 없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철학자들과 다시 친해져봐야겠다며 오랜만에 철학, 미학 책들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았다. 물론 칸트는 이번에도 실패임이 자명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