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지 않은 날

100일 글쓰기 - 67

by 모사가


콱 막힌 날이다. 말과 글, 어떤 것도 뱉고 싶지 않은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때인가 보다.

작가가 되고 출판을 하고 싶다거나, 혹은 지나온 나날을 정리하고 싶은, 그런 구체적인 목표 없이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쓰고 싶은 걸 써왔다. 그러다 아이의 입학과 함께 이어진 일정과 피로 누적으로 無의 상태에 이르렀다. 글이라곤 처음 써보는 주제에 겁도 없이 100일이나 도전했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마음에 쏙 드는 뿌듯한 하루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못한 걸 잘 넘기는 게 훨씬 어렵다. 인생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오롯이 내 의지의 문제로 일어나는 일들엔 실망이 매우 크다.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되고, 하다 보면 잘하는 날이 있기도 하겠지, 그런 너그러움이 없는 것마저도 속상하다.

자갈, 모래, 진흙이 쌓여 빈틈없는 퇴적암을 만들고, 오랜 시간 열과 압력을 받아 형성되는 편마암의 단단함을 떠올린다. 지금은 다양한 입자로 견고한 삶의 지층을 쌓는 시기라 자위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고운 모래로 아주 작은 틈새쯤은 메꿨으리라 믿는다.

요즘 조효제 선생님의 [인권의 지평]을 읽고 있다. 휴직 전 읽기 시작했는데 한동안 덮어놓았던 책이다. 쉽지 않은 책이라 천천히 곱씹는다. 코로나의 전파와 더불어 아주 많은 질문을 던지는 무거운 글이지만, 오늘은 이 부분의 소개로 마무리해야겠다.

"병균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공격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확률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정치. 경제. 사회적 구조 탓에 열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이는 발병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발병 후 치료와 요양을 통한 대응력을 낮춘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질병을 엄밀하게 생물학적. 임상적 실체로만 이해하고 가르치며, 이에 입각해 보건 정책을 입안하게 되면 질병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자신이 방문한 모든 곳에서 이런 현상을 목격한 파머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아야 함을 절감하면서, 누가 왜 그런 관점을 방해하는지를 묻는다.(조효제, [인권의 지평], 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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