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마다 가는 교육(을 빙자한 상담)의 담당 수녀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돌아오는 회기에 필요한 자료가 있는데 혹시 부탁할 수 있나 물었다. 마침 예전 수업시간에 활용했던 것들이라 찾아보겠다 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수업자료를 모아놓은 usb를 뒤졌는데 용량이 컸던 파일이라 다른 곳에 옮겨 놓았는지 없다. 그렇다고 창고에 가 짐이 들어있는 상자들을 일일이 열어 찾기도 좀 번거로워서 남편에게 다시 다운을 받아달라 요청했다.
개인적인 경험상 자료가 여러 개면 한데 모아 압축한 형태로 받는 게 쓰기가 편해 작업을 하려 했다. 한번 쓰면 버릴 파일이라 바탕화면에 빼서 압축해 메일을 보내고 휴지통에 버릴 요량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파일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갑자기 사라졌다. 남편을 다급히 불렀다. 구시렁구시렁 볼멘소리를 해대며 뭘 건드렸냐 타박을 한다. 이래저래 하려 했다 이야기를 했더니 대뜸 이런다.
"이래서 컴맹이랑은 같이 일하기 힘들어."
순간 화가 불같이 올라오는데 일단 참았다. 옆에 아이도 있고 당장 보낼 메일이 급하니 싸울 수 없었다. 속으론 컴맹이 아니라 입학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애 알림장 한 번을 안 봤구나, 그래서 애 줌 수업 세팅도 컴맹인 나한테 다 맡겼나 보지? 등등 욱하고 올라오는 말이 수십 개다. 용처럼 불뿜는 내 성격에 참지 않을 걸 알면서도 굳이 그런 말을 내뱉은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공대남자와 경영대오빠의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대 전공으로 경영대 쪽 일을 하다 보니 그런 듯하다. 수치를 좋아하고 결과에 만족하며 성취에 관심이 많다. 반면 나는 뼛속부터 문과여자다. 돈 안 되는 것만 골라 찾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진빼는 걸 즐긴다. 어찌 보면 공상과 이상의 세계에 사는 망상 주의자 같기도 하다.
잠들기 전 컴맹이라는 말은 과했다며 남편은 사과를 건넸다. 그때까지도 마음이 풀리지 않은 나는 사과는 받을 사람이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거라고 톡 쏘았다. 우리 부부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젊다, 서로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지만 정작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 남편과 내가 모르는 남편 덕에 힘들 때가 많다. 남편은 단어 하나에도 민감하고 혼자 자가발전하며 화를 키워 폭발하는 내가 외계인 같은 눈치다.
오늘도 아침부터 평소처럼 또 투닥거리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평화가 있다. 버럭 하는 나를 잠재우려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고, 나는 세 번 할 잔소리를 한 번만 한다. 이렇게 이과남자와 문과여자의 백년해로가 완성되어 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