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외롭다. 혼자 넓은 음역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지만, 연주자는 오로지 나와의 싸움을 이겨내야 하기에 매우 고독하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저것 많은 악기를 듣지 않아도 풍부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어 피아노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를 뒤집으면 연주자는 그 소리를 모두 혼자 고군분투하며 내고 있다는 게 된다.
어린 시절 엄마는 반주자가 없어도 되는 악기라며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나 역시도 우리 딸에게 왼손 오른손 악보를 둘 다 볼 수 있는 악기는 피아노뿐이라며 레슨을 시킨다. 생각해보면 나나 딸 모두 혼자 연습해 본 기억이 없다. 난 늘 방문 레슨을 받았고 집에서 뚱땅이는 게 전부라 엄마가 항상 함께 들어주셨다. 우리 딸도 내가 같이 쳐주거나 옆에서 봐줘서 혼자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딱히 외롭거나 고독한 기분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아이 겨울방학 동안 쉬었다 다시 시작한 내 레슨 때문에 집에서 연습을 한다. 아이가 있을 때 하면 자기는 왜 엄마처럼 치지 못하냐고 속상해하기 때문에 학교 간 사이 낮시간에 주로 친다. 10년 넘게 친 나와 같기를 바라는 딸도 기가 막히고 그걸 또 역성을 들어 시간을 피해 치는 나도 웃긴다.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인 나 홀로 연습은 정말 지겹다. 원래 연습이란 게 처음부터 한번 쳐본 후론 지난한 구간 반복이다 보니 재미가 없는데 그마저도 혼자이니 세 번만 처도 한숨이 나온다. 생업도 아닌 취미생활에 이리 열심을 다할 일인가 싶어 절로 헛웃음이 지어진다.
드디어 남편도 긴긴 재택이 끝나고 오랜만에 혼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악보를 펴고 첫 음을 지그시 눌렀다. 앵앵 울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낡은 피아노가 힘을 낸다. 나도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