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한 그릇

100일 글쓰기 - 79

by 모사가


오랜만에 혼자 밖에서 밥을 먹었다. 워낙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라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밥 먹고 쇼핑하고 영화 보고 공연 다니고, 혼자인 게 편하다. 멀찍이 앉아 사람들 구경도 하고 배경음악 같이 잔잔하게 떠드는 소리도 듣는다. 어쩌면 혼자이지만 그 속에 있는 것에서 덜 외롭다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날이 따뜻해 오늘 메뉴는 냉면이다. 요새 안 비싸진 게 어디 있겠냐 마는 9500원이나 하는 가격은 놀랍다. 10년 전 압구정 현대 지하에서나 봤던 냉면 가격이 소박한 동네의 작은 백화점 푸드코트로 옮겨왔다. 맛은 있다. 자극적이게 맵고 짜다. 오랜만의 조미료 가득한 맛에 혀가 연신 놀란다.

낡은 나무 탁자에 "노란 게 식초고 빨간 게 겨자인가?" 헷갈리는 양념통이 놓여있고, 이쪽 테이블에서 저쪽 테이블로 옮겨 다니던 육수 주전자와 화려한 꽃무늬 앞치마를 입고 "3번에 물냉 둘 비냉 하나요"를 외치는 아주머니들은 더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더운 여름 소박한 주머니 사정에도 쉽게 먹을 수 있던 차가운 얼음에 쑹덩쑹덩 고명을 썰어 올린 투박한 냉면 한 그릇은, 설거지도 힘든 놋그릇에 알록달록 색 맞춰 고급스럽게도 담겨 나온다.


육수가 든 주전자와 식초, 겨자 통도 이젠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는 칸막이만 가져다 놓은 게 아니다. 여러 사람의 손이 닿는 물건은 전부 일회용품이나 개별 사용품으로 대체되었다. 1인용 나무 쟁반에 냉면과 따뜻한 육수 한 사발, 일회용 식초와 겨자가 담겨 나온다. 소포장되어 있는 겨자와 식초는 넣어 먹고 싶은 욕구를 뚝 떨어뜨린다. 그럼에도 한 그릇을 금세 뚝딱 해치웠다. 겨자와 식초는 받은 자리에 그대로 놔뒀다. 손도 안 댄 것들인데 버려질지 아니면 다른 손님의 상에 나갈지 궁금해졌다.

백화점 문 밖으로 나오니 바람마저 따뜻하다. 여기저기 피는 봄꽃과 나무 끝의 연둣빛 새순에 마음이 설렌다. 현실은 어둠에 가까우나 저 멀리 아득한 빛이 오는 기분이 든다. 무엇이 보통의 삶인지 모르는 시간을 살고 있지만 곧 예전 같은 일상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외롭지만 편한 혼자만의 시간이 좀 더 다채롭게 채워질 수 있길 바라본다. 아, 그때 되면 복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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