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육아 엄마를 살려주는 육아 앱, Instagram!
내가 임신을 하고 우리 이모는 “아이가 제발 얼굴은 아빠 닮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그래, 외국인인 남편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 두상은 작고 쌍꺼풀진 눈은 크고 코는 오뚝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인의 미(美)의 기준이자 성형수술의 가이드라인 아닌가. 아이의 백일 사진을 위해 세 식구 같은 옷을 살까 하고 한국 온라인 쇼핑몰들을 검색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엄마 아빠 모델은 딱 봐도 성형미남 성형미녀이고, 남자아이 여자아이 모델은 혼혈아이들인 것을 보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사람들은 아이에게 예쁘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물론 아빠를 꼭 닮았다며!) 나는 살면서 평생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열 손가락 꼽을까 말까인데, 내가 낳은 아이가 사람들에게 맨날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엄마로서 기분은 좋았으나 한편으로 참 묘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칭찬은 엄마를 춤추게 하였다! 나는 아이의 돌 전에 평생 내가 산 옷보다 훨씬 많은 아이의 옷을 사재기하고, 아이의 OOTD(오늘 입은 옷차림, 오늘의 패션, Outfit Of The Day) 사진을 매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백일까지는 매일 디데이(D-Day) 달력을 배경으로 세워두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목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에게 매일 새로운 옷을 입히겠다고 엄마 혼자 애 아닌 애를 썼다. 그리고 그날그날의 사건사고를 적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날, 배꼽에서 탯줄이 떨어진 날, 출생 신고를 한 날,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바깥 산책을 한 날, 마트에 장을 보러 간 날, 쪽쪽이를 처음 물린 날, 김정은이 트럼프와 첫 회담을 한 날(!), 응급실에 간 날, 아이가 울 때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나오던 날,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날 등의 사건을 그날의 사진과 함께 모두 기록하였다.
하루하루 색다르고 반짝이는 사진을 남기기 위하여 의상뿐만 아니라 온갖 소품들이 투입되기도 하였다. 초점책 프린트, 신생아용 체중계, 모빌, 임신 중에 찍은 아이의 3D 초음파 사진, 아이의 출생증명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처음 만나는 라이브 동영상(!), 바운서, 아기체육관, 유모차, 전자키보드, 카시트, 선글라스, 육촌 누나에게 물려받은 여장(?) 의상과 장신구까지. 누워있는 침상 사진밖에 찍지 못하는 아이를 매일 새로운 테마 속 주인공을 만드느라 엄마는 또 혼자 애 아닌 애를 썼다.
그것이 내가 이 고되고 외로운 육아를 버티는 힘이 되었다. 멀리 해외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아직 한 번도 우리 아이 얼굴을 직접 보지도 또 품에 안아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 많게는 7-8개 포스팅으로 아이의 얼굴과 일상의 모습을 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모 셋 중에 둘은 스마트폰에 인스타그램 앱이 아예 우리 아이 사진첩이다. 노안으로 가까이에서는 사진이 잘 보이지 않아 폰을 멀리 치켜들고, 투박한 손동작으로 두 번 터치 좋아요를 누르고 계실 이모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첫 아이라 모르는 것도 또 그만큼 걱정도 많아서 별의별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런 근심들과 경험들을 포스팅에 같이 쓸 때마다, 이곳에서 또래 아이들을 같이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조언과 격려의 댓글을 달아준다. 다들 타지에서 가족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의 말하지 않아도 알겠는 끈끈한 마음들이 전해진다. 그리고 눈도 채 뜨지 못하던 갓난쟁이 시절부터 이제 어엿한 어린이 느낌이 물씬 나는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을 같이 보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내 인스타 친구들은 모두 한국인인데 한국어를 전혀 읽지 못하는 (인스타에 번역 기능이 있긴 하지만 엉망이다) 우리 남편도, 내 인스타 친구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이 궁금해서 가끔 내 폰을 슬쩍 가져가 혼자 키득거리며 아이들 사진을 훔쳐보곤 한다.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엄마의 하소연을 매일 쓰며 스트레스를 푼다. 아이가 하루 종일 이유 없이 징징거릴 때, 저도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하니 저러겠거니 싶다가도,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는 울분과 답답함이 치밀어 오른다. 그것을 매일 남편에게 말로 다 풀자니 가뜩이나 서로 힘든데 자꾸 싸움만 되고, 그렇다고 술로 풀자니 아이 때문에 밤잠까지 못 자는 형편에 피로만 가중되었다. 그래서 인스타에 글로 다 풀었다. 모두에게 속 시원히 말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오픈 일기장인 셈이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배운다며 요새 엄마들은 ‘엄마표 놀이’를 만들어 아이들과 정말 잘 놀아준다. 그러나 그 놀이가 엄마에게도 즐거우려면, 오래 지속될 수 있으려면 ‘엄마의 놀이’도 병행되어야 한다. 촉감놀이를 한다고 욕조 한 가득 미역을 풀어놓고 아이가 미끌미끌한 미역의 촉감을 즐기고 있을 때, 엄마는 그 어마 무시한 욕실 청소를 하기에 앞서 아이의 행복한 미소를 카메라에 담고 인스타에 포스팅을 하는 거다. 그것이 엄마의 놀이다. 그래야 좋아요와 댓글로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 또 힘을 내서 아이와 신나게 촉감놀이를 할 수 있다.
내 인스타를 보고 내가 정말 즐겁게 육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단언컨대 육아가 그렇게 신나고 재미난 일이었다면 나는 결코 인스타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와 전쟁을 치르고도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외마디 비명이요. 해외에서 아직 말 못 하는 아이와 속시원히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 남편과 같이 살면서, 여기에라도 말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서 나의 모국어로 한글을 읽을 수 있는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신문고이다. 가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인스타에 쓸 수 있는 최대치 글자 수를 다 채워 쓰기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의 모습은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울 만큼 정말 예쁘고 소중하지만,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육아의 일상에 지치고 힘에 부쳐서 아이가 미워 보일 때,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이 시절이 얼마나 감사한지 자꾸 잊어버릴 때, 지금 이 시간의 한 조각을 얼려두었다가 십 년 후에 이십 년 후에 다시 꺼내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마치 이유식 할 때 재료들을 소분해서 큐브로 얼려놓는 것처럼.
흐르는 세월을 막을 도리는 없지만 매일 인스타에 차곡차곡 추억의 조각들을 채우며, 나중에 아이가 다 크고 지금의 이 소란이 그리울 때쯤 가끔 하나씩 꺼내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연금이나 보험처럼 나의 노후 대비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엄마의 고생담도 깨알처럼 다 적고 있으니, 나중에 아이에게 배상 청구를 할 증명 자료로 쓰게 될 수도 있겠다. 모름지기 자식이란 부모에게 평생 자식, 나 몰라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