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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Aug 03. 2020

개새끼와의 산책, 그 험난한 순례길에서

<아이와의 산책은 엄마의 심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정처 없이 발길 가는 대로 어슬렁 저슬렁 산책을 즐기는 편이다. 뛰기는 못해도 걷기는 잘해서 한두 시간쯤 걸어 다니는 것도 잘하는 편이다. 임신을 하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최소 한 시간씩 동네를 돌며 산책 태교(!)를 하였다. 아이를 낳고도 나름 큰돈 주고 구입한 디럭스 유모차 값이 아깝지 않을 만큼, 여름이나 겨울이나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17개월에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두 돌이 지나니 이제 제법 잘 걷는다. 한 시간쯤 돌아다니면 저도 다리가 아파 안아달라고 보챌 법도 한데 웬만해선 그러지도 않는다. 그래서 점점 유모차는 집에 모셔두고, 둘이서 손 잡고 가뿐하게 산책을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와의 산책은 딱히 몇 시에 어디를 가야 하는 것도, 언제까지 꼭 집에 돌아와야 하는 것도 아니니, 바람이 데려다주는 대로 방향도 속도도 마음대로다. 다만 그 바람 키를 쥐고 있는 길 위의 선장, 그 마음의 컨트롤 타워가 내가 아닌 아이라는 점이 문제이지만.


산책을 나서는 길은 언제나 좋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밖에 나가자고 조르던 아이는 두 눈을 반짝반짝, 두 손 두발 팔짝팔짝, 집을 나서는 순간 온몸으로 기쁨을 발산한다. 먹는 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아이를 식탁에 앉혀놓고 뭐라도 먹이는 아침 임무를 완수한 엄마도 일단 잠시의 해방감을 맛본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훅 하고 들어오는 겨울 아침의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우리가 사는 남반구 호주는 현재 겨울) 굿모닝 인사를 하며 우리에게 어서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자, 이제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내가 쓸모없는 고민을 잠시 하는 동안, 아이는 이미 집 앞 우편함을 열어 앞뜰의 돌멩이를 하나 주워 넣고 있는 중이다. 우리 집 우편함은 아직 자물쇠를 걸어놓지 않았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그것을 열어볼 때, 온갖 고지서들 사이에서 아이의 돌멩이 선물을 보고 풉하고 한번 웃을 수 있길, 그날의 피로를 날려버리고 현관문을 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퇴근하고 집에 온 아빠에게 기쁜 돌택배가 되길!



아이는 우편함 문을 쾅하고 닫으며 “이봐, 길잡이는 나야. 보호자는 얼른 따라오기나 하라고!” 하는 듯 깡총깡총 옆집 우편함을 향해 뛰어간다. 자물쇠가 걸려있는 옆집 우편함 속을 빤히 들여다보더니 별안간 그 옆에 있는 수도계량기 뚜껑을 확 열어젖힌다. 그때부터 골목 끝까지 우리 동네 어느 집이 물을 많이 썼나, 집집마다 수도계량기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 숫자들을 확인한다. 나는 그 뒤를 따라 계량기 뚜껑을 하나하나 닫으며 거기 쓰인 숫자만큼 내 피로도는 더해지고 더해진다.


길가에 돌이란 돌은 다 주워 던져봐야 하고 풀이란 풀은 다 뽑아봐야 한다. 어쩌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아이는 그 돌 혹은 그 풀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꼭 내민다. 이제 두 돌 지난 아이가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일까? (26개월인 아이는 아직까지 어린이집에 다닌 적도 없다) 신기하기도 하고 참 예쁘기도 하지만, 지금 코로나로 비상인 이곳에서는 아이의 이런 행동을 제지해야만 한다. 이제 두 돌 지난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엄마도 잘 모르겠는 답답한 요즘이다.


집배원이니? 수도검침원이니!



앞뜰에 온갖 조각상과 조명들로 멋지게 장식을 해놓은 집 앞을 지나갈 때면 엄마의 간담은 서늘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남의 집 정원으로 쏙 들어가 독수리 조각상 머리를 쓰다듬는다. 햇빛 에너지를 받고 있는 LED 태양광 정원등의 솔라 패널을 확 접더니 그 가는 목기둥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내 스트레스 컨트롤 타워는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엄마를 절대 돌아보는 일도 없다. “엄마 간다. 안녕. 바이 바이.” 같은 말도 결코 통하지 않는 아이이다.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날 기세로 무조건 자꾸자꾸 집에서 멀어져만 간다. 자, 그럼 이제는 둘러업거나 질질 끌고 집으로 갈 시간이다. 내 남은 에너지와 집까지의 거리를 계산하여 집으로 가는 방법을 정한다.


아이와의 산책은 엄마의 심신 건강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를 질질 끌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길 건너편에 우아하게 차려입으신 아주머니가 우아하게 생긴 개랑 우아하게 산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개도 덩치만 컸지 아직 강아지인지, 이 집 저 집 앞뜰마다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리다가 목줄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저 아주머니는 저 개의 목줄을 끌며 좀 짜증은 나도 ‘이 개새끼가 왜 이렇게 말을 안들을까!’ 하고 개에게 직접 화가 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 이제 제법 말귀를 다 알아듣지만 또 말은 죽어라고 안듣는 우리 집 똥강아지를, 내가 그래도 사람새끼라고 참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화까지 내고 있구나, 그냥 앞으로 한참 더 강아지 새끼라고 생각해야지! 개새끼와의 산책, 그 험난한 순례길을 매일 아침 반복하며, 엄마는 몸과 마음이 자란다.






* 코로나 여파로 4월부터 엄마의 토요일 육아 휴일이 임시 중단된 상태입니다. 혹시라도 제 글을 기다려주신 구독자분들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 다시 힘을 내어 일주일에 한 편 씩은 꼭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아주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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