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태와 영자의 ABC-9

닭백숙과 김치찌개

by 임경희


*그 남자 코글*


네팔인들의 80%는 인도계 아리안족이다. 아리안족 코글은 34살인데 큰딸이 16살이라 해서 깜짝 놀랐다.

네팔리들은 대부분 일찍 결혼한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처음 만나자마자 우리의 직업부터 물었다. 직접 초청해 줄 가능성이 있는 소규모 사업가이길 기대했는지 실망의 빛을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행이 절실해 보였다.

한국에 오려면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한국어 교습소 수강료가 한 달에 최고 30만 원, 보통의 네팔리 월급 두 배 정도인데 기본이 석 달은 배워야 한다. 시험은 오직 카트만두에서만 치러지는데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15시간씩 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도 많다. 시험에 붙어도 한국에 꼭 간다는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항공료, 알선료 등 100~200만 원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1~2년 이상의 월급이다. 그러니 웬만한 네팔리들에겐 그저 꿈같은 나라로 그려지는 나라가 내 나라 대한민국이다. 지구 한쪽에서는 그렇게 열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땅에 태어난 우린 풍요롭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산에서 마주치는 네팔리들은 대개는 궁핍하고 피팍해 보인다. 그나마 트레커와 관련된 직업인 포터나 가이드는 수입이 나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코글은 가이드 겸 포터로 아주 유능한 쪽인데 그의 하루 일당으로 우리가 업체에 지불한 돈이 17달러이다. 그중 수수료 떼고 남은 돈이 그의 몫인데 거기서 숙식까지 해결해야 한다. 8일 동안 10만 원 남짓한 돈을 받고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새로울 것 없는 같은 길을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것이다. 한 달에 많아야 두 번 정도. 그것도 성수기인 10월, 11월에만. 비수기엔 뭐 하냐고 물으니 그냥 논단다. 2달러로 하루를 산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단순한 짐꾼으로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많다. 짐 나르는 수단으로 당나귀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해발 2500m 이상은 오롯이 사람들 몫이다. 35kg짜리 가스통 두 개를 넣은 커다란 바구니의 끈을 이마에 얹어 머리의 힘에 의지한 채 끔찍한 무게를 감당하며 험한 산을 오른다. 그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면 어김없이 웃으며 나마스테를 나누어 준다. 그러므로 똑똑 떨어지는 뜨거운 물이지만 눈물 나게 고맙다.


여자들도 있다. 한국 단체여행객들은 한식을 조리해 주는 Cook team을 대동하고 다니는데 어린 아가씨들도 많이 눈에 뜨인다.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는데 맨발에 조리슬리퍼를 신은 이도 있어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은 발을 미안하게 한다.

등반 후 에티켓 팁을 너무 많이 주면 습관이 되니 안 좋고, 다음에 올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전체 팁의 20%를 넘지 말라고 누누이 들었지만 날이 갈수록 건네고 싶은 팁의 액수가 올라가기만 한다.


불콰해진 병태와 코글은 트래커들이 각자 방으로 돌아간 늦은 시간까지 식당에서 일어설 줄 모른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비로소 포터들이 식사를 하는 것 같다. 눈치 없이 앉아있는 병태에게 양해를 구하고 달밧을 손으로 먹기 시작한다. 코글도 우리와 식사할 때와는 달리 손으로 맛있게 잘도 먹는다. 아주 밥통 째 갖다 놓고 먹는 그들의 식사량은 엄청났다. 그 힘든 일을 하면서 먹는 것이라곤 멀건 달밧 국물에 비벼 먹는 밥뿐이니......

식사를 마치면 식당은 그들의 잠자리가 된다. 여전히 눈치 없는 병태는 자기 컨디션이 좋아지니까 그들이 자야 할 시간임에도 일어설 생각 않고 그들과 어울려 한없이 떠들고 싶어 한다. 그런 병태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고 팔을 비틀어 쥐고 방으로 향한다.



-닭백숙과 김치찌개-


오늘 구간은 하산 길이지만 만만치 않다. 롤러코스터 구간이라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을 지난 후 3000 계단으로 악명 높은 촘롱을 또다시 올라가야 한다. 아직도 고산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아 계단을 오르려면 진저리가 난다. 아주 늦장을 부릴 수 없는 것이 점심시간 까지는 한국 식당이 있는 촘롱에 도착해서 닭백숙으로 몸보신한 후, 저녁엔 지누단다에서의 온천욕이 예정되어 있다. 히말라야 산속에서의 노천 온천욕은 상상만 해도 무척 흥분이 된다. 이런 멋진 계획을 생각하면 힘이 날 만도 한데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처음 오를 때는 멋모르고 올랐지만 얼마나 높은지 훤히 알고 있으니 더 꾀가 난다. 마치 두 번째 출산에서 산모들이 더욱 요란을 떠는 것처럼. 과장된 몸짓과 괜한 투정으로 징징대며 걸음을 뗀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돌계단이 끝나니 구릉족의 마을 촘롱이다. 김치찌개와 닭백숙을 천 번쯤 되뇌며 도착한 촘롱. 부지런한 그들은 가파른 산을 빽빽한 밭으로 일구어 놓았다. 거의 절벽 끝에 세워진 로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설산들과 아래쪽의 촘촘한 계단식 밭의 조화는 다시 봐도 경이롭다. 빼어난 경치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 음식이다. 며칠을 거의 못 먹다시피 했기에 체력은 바닥이다. 올라올 때만 해도 다시 ABC까지 뛰어갈 수 있다며 허풍 떨던 병태가 다 올라와서 갑자기 쓰러져 버린다. 어젯밤 코글이 권하는 대로 빈 속에 독한 술을 마실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배탈이 나서 계속 변소를 들락거리면서도 영자 앞에서 허세를 부리더니 다 올라오니 긴장이 풀어졌나 보다. 진하게 끓인 인삼차를 마시고 한참을 누워 쉬게 한 뒤 김치찌개와 백숙을 주문한다. 참치캔을 넣어 끓인 김치찌개는 기대보다 맛있다. 커다란 다리 하나뿐이지만 마늘을 넉넉히 넣고 푹 끓인 백숙도 훌륭하다.


그때 공항에서 바바리가 갑자기 꼬리를 내린 사건만큼 신기한 일이 발생한다. 밥맛 없다고 도리질만 치던 병태가 단 한 숟가락의 김치찌개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병태는 찌개국물을 깨끗이 비우고 영자 몫의 닭다리를 주는 대로 눈치 없이 반이나 먹어 치운다. 영자도 허기진 건 마찬가지였지만 모처럼 게걸스레 먹는 병태가 고마워 한국전쟁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자꾸만 병태의 밥그릇 위에 고기를 올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