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다시 되돌아오는 여정이다. 세잔이 말년을 보냈다는 액상 프로방스에 가서 세잔 아틀리에를 보고,
고흐의 마을 아를로 가는 날이다.
프랑스에 왔으니 예술가들의 흔적을 좇게 되었는데, 위대한 예술가는 당연히 걸작도 남기겠지만, 후손에게 남기는 경제적인 가치도 엄청난 것 같다. 세잔 아틀리에는 말 그대로 세잔이 작업했던 아틀리에로 그가 사용했던 팔레트, 그의 옷가지, 사다리, 작품에 등장하는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달랑 방 하나 구경하는데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8천 원이다. 물론 대가의 채취를 느껴본다는 것에 가치를 둬야 하겠지만, 여기뿐 아니라 어딜 가나 비싼 입장료를 받고 있어서, 관광수입만도 대단할 것 같다.
세잔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동산을 걸으면 혹, 특별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평범한 육순이는 암만 킁킁대고 기웃거려 봐도 동네 뒷산 이상의 느낌은 없다.
아를을 향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이젠 제법 차에 익숙해졌다고 방심했던 것이 문제였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제한속도가 130km인 곳이 제법 많았고,
150km까지는 괜찮다는
어느 블로거의 말씀에 따라 나도 모르게 140km의 속력을 내고 있었다.
옆 자리 친구가 에어컨이 고장이니 환풍기라도 틀자는 말에 무심코 한 손만 핸들을 쥔 채, 잠깐 한눈을 팔며 다이얼을 조작하려 했다. 순간 7인승 커다란 차가 갑자기 토끼처럼 통통 거리며 지그재그로 마구 튀는 것이다. 아직 140km의 속도는 내 본 적이 없어서 핸들을 살짝만 틀어도 그리 무서운 결과가 생기는 줄 몰랐다.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편도 3차선 중, 2차선으로 주행 중이었다. 1차선과 3차선을 넘나들며 고삐 빠진 말처럼 멋대로 날뛰던 차는 뒤에 오는 차가 없어서 큰 사고 없이 진정될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그리고 아직도 핸들 잡기가 두렵다.
내 생각을 눈치챈 친구들이 그 후부턴 운전을 제외시켜 주었으니, 염치없었지만 고마웠다.
가슴 쓸어내릴 사건 하나 또 추가하며 아를에 입성한다.
호텔의 지하주차장들은 왜 그리 비좁은지 요리사 순자가 어려운 운전까지 도맡아 해서 한참을 애쓴 끝에 무사히 주차한 후, 즐길 시간이 별로 없으니 서둘러 구도심으로 나간다.
아를은 고흐에 의한, 고흐 때문에 알려진 도시다.
고흐가 입원해 있던 정신병원을 보려면, 긴 시간 참고 기다려야 입장권을 살 수 있고, 입장하는 줄로 이동 후 한 참을 더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다. 고흐 작품인 ‘밤의 카페’의 주변은 밤늦도록 작품 속에 빠져있고 싶은 인파로 항상 북적인다고 했다.
구도심으로 향하는 길은 나른하고 흐느적거려 썰렁하고 음산하다. 말로만 듣던 바바리 맨까지 출현하는 바람에 줄행랑쳐서 밤의 카페가 있는 골목으로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처럼 반짝거려서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정작 밤의 카페는 음식 맛이 별로니까 앞집으로 가라는 얘기를 들어서 앞집에 앉아 여태껏 먹어봤던 돼지고기 요리 중 제일 맛있는 요리에 와인을 곁 들인 식사를 했다. 그림과 똑같은 노란색의 밤의 카페에 잠겨있으니, 정말 고흐 그림 속의 주인공인양, 꿈만 같다.
카페에서 우리 호텔은 걸어서 3분 정도로 가까웠기에 마음 놓고 늦게까지 앉아 있다가 돌아오는 길.
분명히 우리 호텔 간판을 향해 걷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간판도 보이지 않고,
인적도 없이 점점 으슥해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유령마을이라도 들어선 듯 섬뜩하다. 이정표를 잘못 보고 그냥 걸었던 것이다.
아를의 외곽은 가지 말라던 경고가 떠오르며,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환할 때도 이상하게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이 많던데 자정이 다 된 시간이니, 우리 숫자가 많다고는 해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허둥대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폭주족이 우리에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더니
다행히 그냥 지나쳐 간다.
살 만큼 살아 무서울 게 없다며 잘난 척을 하던 할매들은 꽁지 빠진 닭 신세가 되어 또다시 혼비백산 줄행랑을 친다.
다음날 아침에도 아를은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모처럼 친절한가 싶더니 네비가 아를의 좁디좁은 골목길로 인도하여, 경차나 겨우 다닐 수 있을 구도심 미로로 접어들었다.
살짝 과장하면 도로 폭이 우리 차 양 옆으로 20센티 정도 여유밖에 없는데 계속 직각으로 구부러지는 길이다. 좌, 우회전으로 돌 때마다 두 명은 담 모서리에 쿠션을 대고, 두 명은 맨발로 뛰어나가 차 앞뒤에서 고함치며 신호해서 거의 7~8번은 전진, 후진을 반복해야
겨우 빠져나오곤 했는데 그때도 기사는 순자였다.
차 안에서는 짐 위에 앉아야 했기 때문에 늘 맨발이었고 신발은 뒤에 타는 사람이 짐 밑, 아무 데나 쑤셔 넣고 다녔기 때문에 급할 땐 맨발로 뛰쳐나갔던 우리를 보며 프랑스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라의 이미지를 끌어올리지는 못한 것 같아 창피하다.
한 번은 휴게실에서 쉬다가 차를 출발시켰는데 경찰이 손을 들어 차를 세운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놀라 정지했고,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친구 운동화가 얌전히 놓여 있다. 예의 맨발로 뛰어가 들고 왔는데, 그들이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 차를 탈 때도 신을 벗고 탄다고 생각할 거라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또 한바탕 웃었다.
침착한 순자의 운전 덕에 무사히 아를을 빠져나와 레보드 프로방스로 향한다. 이곳 역시 바위 성으로 이루어진 요새마을이었는데 이곳에선 마을보다는 Le's carrieres de lumieres 관람이 목표다. 프랑스여행을 위해 이것저것 공부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곳인데 거대한 바위동굴 안에 빛으로 명작들을 표현하여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설명과 사진을 보고, 너무 가고 싶었다. 빡빡해서 시간 내기 어려웠지만 슬쩍 일정에 끼워 넣고 혹 별 볼일 없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던 곳,
그러나 몽블랑에 이어 두 번째로 기대를 많이 하고 갔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