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나풀나풀 내게 왔다.
별처럼, 눈송이처럼, 벚꽃 잎처럼
그렇게 살랑대며 내게 안겼다.
달큼하고 말랑한 녀석을 품 안
가득 안고 구름 위를 걷는다.
가만가만 걷는다.
어릴 때 음표까지 달달 외웠던,
김 대현, 모차르트, 브람스,
슈베르트의 자장가와 섬 집
아기를 나지막이 부른다.
아가는 잠든 지 오래되었지만
내려놓기 아쉬워 자꾸 부른다.
딸의 산후조리는 각오보다
버거웠다.
딸을 쉬게 하려고 두세 시간
잔 후 종일 동동거렸더니,
늘 허둥대고 두서없었다.
방바닥을 훔치다가 삶던 빨래
태워먹기 일쑤고, 개수대에는
생선접시와 미역국 찌꺼기와
우유병이 비빔밥처럼 섞여
있었다. 수북이 쌓인 포도껍질
위에 닥지닥지 달라붙는
초파리에 진저리 치며
냉장고의 포도를 쓰레기통 속에
몽땅 쑤셔 박고 싶었다.
딸은 도우미를 부르자고 성화를
부렸지만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시키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거절했다. 20대 체력인 줄
알았더니, 금세 바닥을 드러내
종종 어지러웠다.
잠든 아기를 본다.
눈을 깜박거리고 숨을 할딱
거리더니 방시레 웃어준다.
배냇짓 웃음 한방에 할미마음이
요동친다. 닿을 듯 다가가 숨을
큼큼 들이마신다. 몽롱하다.
아기가 눈을 뜬다.
녀석은 유난히 네모에 관심을
보인다. 사진 찍으려 폰을
들이대면 모델같이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여배우가 되려나?
할아비가 로드매니저를 맡아
주변 잡것(?)들을 물리치겠단다.
벽에 걸린 그림을 골똘히
바라본다.
화가를 만들까? 프랑스 유학비를
모으려면 십 년은 더 일해야겠네?
아기는 다리에 힘주고 서있는
자세로 안겨 할미어깨 밖 세상을
궁금해한다.
목을 제법 가누고 발길질도
힘차다.
골프선수를 시킬까? 이번에도
할아비가 캐디를 자처한다.
사위의 근무시간은 유연했다.
야근을 하면 그만큼의 휴가가
주어졌다. 휴가를 많이 모아
조리하러 대전에 있는 동안 함께
있을 수 있다며 딸은 신나 했다.
나는 신나지 않았다.
“얘, 사위 밥 해 먹이는 게
더 힘들다 더라”
“그럼 어떻게 해? 울 오빠
아기 보고 싶어서. 오빠한테
엄마를 도우라고 할게.”
그러나 사위는 공주 딸보다
한 수 위, 왕자였다.
할아비를 아침 먹여 출근
시키고, 산모 아침상 치우고
난 후 좀 쉬고 싶을 때 일어났다.
아침은 대충 먹고, 점심은 제대로
먹고 싶어 했다. 게다가 식성이
많이 까다로웠다.
까다롭고 제대로 된 점심상
차리는 일은 육아보다 훨씬
힘들었다.
딸이 유구염에 걸려 병원과
마사지실에 다닌 지 사흘 째
되는 날. 그날따라 아기는
잠시도 자지 않고 울었다.
점심식사 만들려고 꺼내놓은
야채들은 싱크대 가득 널브러져
있고, 토물이 묻어 벗겨놓은
아기 옷과 이불, 기저귀들이
거실 곳곳에 나뒹굴었다.
집에 돌아온 딸은 아프다고 징징
울고, 딸보다 더 철없는 사위는
배고프다 보챘다.
허겁지겁 부엌 쪽으로 왔는데,
폭탄 맞은 것 같은 그곳이 낯설고
생경하여 어디에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해, 벗기다만 우엉 대를
붙잡고 나도 큰 소리로 엉엉
울고 싶었다.
우유 먹던 아기가 두 손으로
우유병을 슬며시 잡더니
저 혼자 먹기 시작한다.
어미와 할미는 아무래도 천재
같다며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같은 어마어마한 이름을
들먹이다 염치없어 낄낄거린다.
우유를 다 먹은 아기를 안고
트림을 시키는 일은 할미
몫이다. 어린 죽순같이 야들한
등뼈를 단번에 찾아내어
살살 어루만진다.
아기가 시원스레 트림해 주면
겨울바다 쨍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은 듯 할미 가슴이 함께 트인다
사십 일이 지난다.
아기가 간단다.
힘들었던 건 싹 잊고 서운함만
남는다. 녀석을 보내며 없어진 줄
알았던 설렘과 조심스러운
바람이 생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면 좋겠다.
올곧은 줏대와 당당함으로,
비교하지 말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은 지양하는 힘찬 힘이
있음 좋겠다.
낮은 곳을 바라보는 순한
마음으로 자라길 바란다.
손주가 할미를 찾는 유효기간이
그때는 10년인 줄 알았다.
어느덧 9 년이 지나고
내 가슴 높이까지 훌쩍 자라
완연한 소녀티가 나는 우리
큰 아기는 할배,할매에게 전화
해 달라고 하지 않은지
제법 오래되었다
그래 그까이 꺼 괜찮다
친구랑 노는 것이 훨씬 더
좋아야지 네가 가고 싶은 길을
힘차게 걸으면 되지.
우린 아직 건강하고,
둘이 잘 놀고,
여행도 잘 다니고...
다 좋으니까
오는 손주 반갑고, 가는 손주
더 반가운 것도 맞는 말이니까
ㅎㅎㅎ
그냥 지금처럼
밝고 맑고 튼튼하게만 자라주라.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꽉 차는
우리 큰 손녀.
주님의 아름다움
..... 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