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경희 Jun 20. 2024

요강을 샀다

흔해서 고맙다

순이는 102살이다.

삼 년째 102살이라 한다

그러므로 순희에게 숫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삼 년 전 실버부 예배 도우미를

하면서 순희를 처음 보았다


작고 당당한 순희에게

자꾸 눈이 갔다

실버 예배와 주일 예배에

거의 안 빠지고  출석하는

순희가 예뻤다

순희의 건강이 고마웠다


남편 병태가 교회 주차 봉사를

하게 되어   영자도 예배시간 보다

30분 일찍 교회에 다.

언제나 일찍 와서 앞 줄에 앉아

혼자 예배드리는 

외톨이 순희가 쓸쓸해 보여

그 옆에  앉았다.

순희의 왼 손이 저리

주물러 주었다

순희는 그만해 하면서도

자꾸 손을 내밀었다


팔이  골절되었을 때도

골반뼈가 다쳤을 때도

퇴원하자마자 교회에 오는

순희는 불사조 같았다


순희네 집에 갔다

작은 건물 뒤, 북쪽으로  창문엔

뽁뽁이가 잔뜩 붙어있는

작고 초라한 방.

거기서 혼자 밥하고 청소하고

어른 유모차에 의지해 150m를

걸어 교회에  나오는 순희가

존경스러웠다


일찍 사별하고 아들 셋을 키웠다

둘째를 잃었다

첫째는 순희의 집을 담보로

한도  끝까지 대출을 받아 날렸다

그 후로 순희는 냄새나고

추운 골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순희를 돌보는 일은 셋째 몫이다

셋째는 성실하고 착해 보였는데

아내가 암으로 오래 앓고

있다 했다 서울 변두리에

살고 있는  셋째가 순희를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다

드라마는 현실을 그리는 거..  

맞다


작년 겨울 순희는 목욕이 하고

싶다 했다. 날이 추워지면

집에서 목욕을 못 한다고 했다

서종 면사무소엔 읍에서

운영하는 목욕탕이 있다.


여섯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온탕이 두 개 있는

작은 목욕탕이다  그나마

뜨거운 물도 관리인이  

틀어줘야 나와서

원성이  자자한 목욕탕.

한번 가봤다가 다시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다


순희는  그곳에 가고 싶다 했다.

약속한 날 눈이 조금 왔다

성질은 못됐지만 심성은 착한

병태가 운전을 하겠다고 나섰다

34운전 경력의 영자의 운전을

아직도 못 믿는다. 15분 달려

새벽부터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순희를 데리고 

목욕탕에 갔다


미끄러질까 봐 안다시피 하고

들어간 목욕탕의 10개 샤워기는

빈자리가 없다.

순희가 감기 걸리까 봐 바가지로

물을 계속 붓고 서둘러

몸 구석구석을 꼼꼼히 씻어 준다.

여전히 떨고 있어 머리

물속에 안 담그면 된다는

생각에  머리감기를 미룬 채

급히 탕 속에 앉힌다


낮은 탕 속이지만 혼자 있는

순희가 불안해  영자도 서둘러 

샤워 후  순희 옆에 앉는

잠시 후  관리인이 오더니

탕 속엔 머리 감고  들어가라고

퉁명스레 말한다.

잘 알지만  너무 추워하셔서

그랬다며 머리는 물속에 

안  집어넣을 테니 걱정 말라

다.  싫은 티 팍팍 내며

순희만  꼭 집어 말하니  

조금 언짢다.  


NO  SILVER  ZONE  수영장이

있다더니 뜨건 물에  

몸 담고 싶은  욕조 없는 집

인들은  뜨거운 탕 속은

꿈도 꾸지 말라는 건가?


그러거나 말거나 모처럼 뜨거운

탕 안에서 순희는 매우 행복해

한다  두색  이태리타월로

때를 미니까  검은 국수가락 같은 

때가 한없이 떨어진다

우리 어머니  때 밀어드릴  때

처럼 공들여 닦고 있는데

요기, 요기도 더

순희는 손 안 간 곳을 정확히

지적한다.

늙으면 아기가 된다는 말은

맞다.  

아기 순희는 귀엽다


일찍 씻고 나와 기다리던

병태와 함께 동네

잡화가게에 


얼마 전 영자는 빨간

털신을 선물 받았다.

마침 사이즈도 같고 

낡은 구두만 신는 것이 걸려서  

순희에게 줬더니  좀 작고 맘에

안 든다며  털신이 신고 

싶다 했다.  


받아 든  검정 털신을 품 안에

안아보며 행복해한다.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나 된장찌개 식당으로 갔다

된장이야 집에서도 맨날

먹으니 동태 찌개집으로

가자 한다.   가 본 식당이 근처에

있다는데  식당이름도, 위치도

기억하지 못한다

수 없이 메뉴에

동태찌개가 있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병태나 영자는

동태찌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작 순희도

맛이 없다며

만족해하지 않는다


그 후 검정털신은 한 번도

신지 않았다. 순희를 오래  

보셨던 분 말씀이, 아끼느라 신지

못하는 거란다.

순희는 아기다


한 달 전쯤 순희는 집에서

미끄러졌다.  골반뼈는

괜찮다는데  타박상이 심한지

처음엔 일어나지 못했다.

보호사들이 왔지만

이틀을 못 넘긴다.

열악한 환경의 누워있는  노인.

원하는 건 많고  요구는 분명하다

오래 견딜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긴 하다


요양원은 강하게 거부한다.

전에 며칠 갔다가 옆의 노인을

때리는 걸 봤다며 진저리를 친다.


며칠 후 들렀는데 일어나 서있다

순희는 불사조 맞다.

고맙고 대견했다

그런데 침대 밑에 국물요리

전용, 크고 하얀  일회용 

배달 음식통이 눈에 띈다

어설프게 뚜껑이 덮여있지만  

요란한 냄새가 진동하는

그것에 영자의 시선이 꽂히자

 순희가 민망해한다


바로 요강 검색을 한다

아직도 이런 물건이 있을까?

있다. 심지어 종류도 많다.

도자기 재질보다 스텐이 나을 것

같아  잽싸게 주문한다.


이틀 만에  배달된 요강을 들고

순희에게 갔다.

예상대로 너무 좋아한다

이거 너무 이뻐서 여기다

오줌, 똥 못 싸.  밥 담아 먹을 거야

우~~~~~@#%%^&*

순희는 아기 맞다.


주일에 순희 옆에 앉아 함께

예배 보는 게  참 았다

순희 셋째 아들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고작  옆자리 앉아

예배 보는 사람,

영자의 마음은...


순희가 한 달 전처럼 낡은

유모차에  의지해 교회에

나오면 좋겠다.


오래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병태 말고 병태엄마 그리고 동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